[이웃사랑] "작가 꿈 이루려면…" 재생불량성 빈혈 앓는 김보영씨

입력 2010-05-12 10:24:37

대학 새내기인 김보영(가명·20·북구 침산동)양은 그토록 기다렸던 대학생활을 제대로 즐겨보지도 못한 채 휴학을 하고 말았다. 입학한 지 20여일 만에
대학 새내기인 김보영(가명·20·북구 침산동)양은 그토록 기다렸던 대학생활을 제대로 즐겨보지도 못한 채 휴학을 하고 말았다. 입학한 지 20여일 만에 '재생불량성 빈혈'이라는 진단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저(김보영·가명·20)는 지난 3월 대학교에 입학한 새내기 학생입니다. 문학작품을 너무 좋아해 작가가 되고픈 꿈을 품고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갔지요. 하지만 저는 대학생활을 채 만끽하지도 못하고 휴학을 해야 했습니다. 입학한 지 20여일 만에 '재생불량성 빈혈'이라는 진단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대학 새내기에게 찾아온 재생불량성 빈혈

평상시에도 자주 피로를 느꼈던 저는'고 3때 워낙 운동을 하지 않고 불규칙한 생활을 해서 그런가보다'며 무심히 넘겼습니다. 학교가 산 중턱에 있다보니 늘 숨을 헉헉대며 등하교를 했던 것이죠.

그러던 어느날 귀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자주 앓았던 중이염이 재발한 것이었는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이비인후과를 찾아 치료를 받았습니다. 치료 사흘째 되던 날 의사선생님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큰 병원에 가 볼 것을 권했습니다. 피검사 결과 빈혈이 너무 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3월 25일'재생불량성 빈혈' 진단을 받았습니다.

사실 그때만 해도 이렇게 심각한 병이 저를 찾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대학 새내기 생활에 마냥 신이 났었고, 앞으로 펼쳐질 삶에 대한 기대로 한껏 부풀어 올랐습니다. 첫 MT를 가는 날에 저는 병실에 누워만 있어야 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병명에 하늘이 무너저 내리는 듯했고, 눈물만 터져나와 눈이 퉁퉁 부어올랐습니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유난히 손과 얼굴이 창백했던것, 조금만 부딪혀도 잘 멍이 들곤 했던 피부가 아마도 병을 알려주는 징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씩 혈소판 수혈을 받고 있습니다. 제대로 생성되지 못하는 피를 외부에서 공급해 주는 겁니다. 그래도 증상은 별반 나아지질 않습니다. 수혈을 받고 사나흘만 지나도 이상한 알러지 반응 같은 것이 생겨나면서 손과 목덜미 등에 깨알같은 종기들이 올라옵니다. 병을 앓게 되면서 벌써 몸무게도 6㎏이나 줄었습니다. 잠깐만 외출을 나갔다와도 어지럼증에 주저앉곤 합니다.

◆다시 찾고 싶은 장및빛 꿈

제가 국문과를 택했던 것은 책 읽는 것을 워낙 좋아했기 때문입니다.'작가가 되겠다'고 거창한 목표를 정해 놓은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출판사 등에서 책을 만드는 일을 하게 된다면 제 삶이 참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투병 생활이 시작되면서 제가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참 고마웠습니다. 홀로 보내야 하는 많은 시간에 책을 읽으며 견딜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 신경숙 작가의 소설을 유난히 좋아하고, 최근에는 김별아 작가의 미실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물론 아무리 책을 좋아한다고 해도 지금의 불안하고 답답한 마음을 어쩌지는 못합니다. 당장 치료과정이 얼마나 길고 험난할지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학교를 다니던 동기들이 다 진학을 하고 홀로 동떨어져야 한다는 불안감에 손에 책을 쥐고는 있지만 같은 페이지를 몇 번이고 다시 뒤적입니다.

이제 저는 이달말 골수이식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의사선생님께서는 상태가 점점 악화되고 있어 하루빨리 골수 이식을 서둘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저에게 적합한 골수조차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는데 다행히 6명의 적합자가 나타났고, 그 중에 고마운 한 분이 골수기증을 약속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이식이 결정되고 나니 또 다른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천만원 단위가 넘어서는 이식 비용을 어떻게 마련할까 하는 걱정 때문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작은 공장에 일을 다니다 올 1월 난생 처음으로 사업을 시작하셨습니다. 말이 거창해서 '사업'이지 플라스틱가공하는 가내수공업 정도입니다. 아직 자리를 잡질 못해 수입이 들쭉날쭉입니다. 여기저기서 조금씩 돈을 꿔 겨우 사업밑천을 마련했는데, 갑작스럽게 제가 병원신세를 지게 된 겁니다.

어릴때부터 왼쪽 엄지손가락이 기형인 엄마는 "이럴때 내가 일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가슴을 치십니다. 엄마는 손가락에 힘이 없어 식당일도 힘에 부칩니다. 게다가 아직 챙겨줘야 할 두 여동생들도 있습니다. 세 자매 중 맏딸이 저고, 큰 동생은 이제 고등학교 1학년, 막내 동생은 겨우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고 있습니다.

전 아직 '좌절'을 생각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입니다. 진정한 대학생활이 어떤건지도 해봐야 하고, 채 펼치지도 못한 작가의 꿈도 키워봐야 합니다. 골수 이식쯤은 충분히 견뎌낼 자신도 있습니다. 이런 제가 다시 한번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희망을 주세요.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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