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을 한창 재미있게 시청하는 중이라도 저녁때가 가까워져 오면 허기를 느낀다. 이때 우리는 보던 것을 마저 보고 난 뒤에 식사할 수도 있고 아니면 중간에 간식을 먹을 수도 있다. 선택은 온전히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생물학적인 관점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저녁이 되면 점심을 먹은 지가 오래돼 혈액 속에 당분이 고갈되기 시작하고 인슐린 농도도 떨어진다. 그러면 뇌의 시상하부에 있는 인슐린수용체가 이를 감지해서 대뇌피질로 전달한다. 신호를 받은 전전두엽에서는 당장 간식을 먹어 혈당을 올릴 것인지, 기다렸다가 잘 차려진 저녁상을 대할지를 결정한다.
만일 세로토닌계의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식욕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신경과학의 입장에서 본다면, 음식을 섭취한다는 것은 몸 안에 에너지원의 고갈을 해소하는 생물학적 욕구를 해결하는 행위로서 우리의 의지가 관여할 틈새가 없다.
선택에 눈길을 보낸다면 자유의지가 있다고 주장할 것이고, 에너지를 보충하는 생물학적 욕구일 뿐이라고 한다면 자유의지를 부인하는 것이다. 자유의지의 문제는 행동의 책임 문제와 관련해서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자유의지가 있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자기가 한 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자유의지를 부인하는 쪽에서는 모든 행위는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 앞 단계에서 이미 결정돼 있었기 때문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유가에서는 전자의 입장을 취하는 것 같다. 안연(安淵)이 스승 공자에게 인(仁)에 대해서 물었다. 공자의 대답이다. "극기복례(克己復禮) 즉, 내 몸의 욕망을 삼가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다. (중략) 인의 덕(德)을 행하는 것은 자신에게 달렸다."
진실은 아마도 둘 사이의 중간 어디쯤에 있을지 모른다. 식욕과 성욕처럼 우리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일어나는 행동이 있다. 식욕은 개체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성욕은 자신의 유전자를 세세손손 운반해 주는데 꼭 필요한 방편이므로 대뇌의 변연계에서 관장한다.
변연계가 하는 일은 융통성이 별로 없고 선택의 폭이 아주 좁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도 대뇌피질 특히 전전두엽의 지배를 받음으로써 융통성을 지니게 된다. 전전두엽이 기능을 잘 발휘한다면 행동 선택의 폭이 확대되고, 그런 사람은 융통성 있는 인물이 된다. 따라서 이러한 성향은 자연선택의 간택을 받아서 점점 더 강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인류의 역사이다.
박종한<대구가톨릭대병원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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