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류공원 살던 야생너구리 가족 신암·앞산공원으로 이사?

입력 2010-05-08 07:24:52

돌무지 떠난후 종적 묘연…신암공원서 임신한 암수 한쌍 발견

6일 새벽 1시쯤 대구 신암공원 산책로에 새끼를 가진 너구리가 나타나 취재진이 던져준 먹이를 먹고 있다.
6일 새벽 1시쯤 대구 신암공원 산책로에 새끼를 가진 너구리가 나타나 취재진이 던져준 먹이를 먹고 있다.
2003년 너구리가 최초로 발견된 대구 두류공원 내 돌무지 서식지. 하지만 너구리는 지난해 가을 이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2003년 너구리가 최초로 발견된 대구 두류공원 내 돌무지 서식지. 하지만 너구리는 지난해 가을 이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두류공원에 없었고, 신암공원엔 있었다. '

두류공원의 상징 동물이었던 야생 너구리들이 사람들 눈에서 사라졌다. 두류공원 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지난해 가을부터 개체수가 급감했으며, 12월에 마지막 동영상이 찍혔다. 그 후에는 24시간 운영하는 마루 휴게소 주인이 지난달에 목격했다는 게 전부.

'너구리들이 어디로 갔나?' 사라진 원인을 두고 설(說)이 분분하다. 이 설들은 결정적인 증거없이 그럴듯한 추측들이라 오히려 이런 얘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관계기사 6면

이에 매일신문 취재팀은 5일 밤 9시부터 6일 새벽 2시가 넘은 시간 동안 두류공원과 최근 너구리가 나타났다는 동구 신암공원을 찾았다. 만약 신암공원에 너구리가 있다면 두류공원의 너구리들이 대구 도심 전체에 연결돼 있는 하수관을 타고 앞산공원, 신암공원 등 살만한 곳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 너구리는 하수관 등을 타고 반경 30km까지 이동 가능하다는게 전문가들의 설명.

두류공원 마루 휴게소 인근. 밤 9시부터 자정 무렵까지 휴게소 주인 채창규(41)씨와 최근 너구리의 동향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혹시나 너구리가 다시 이곳으로 올 지 기다려봤지만 헛된 기대였다. 채씨는 "지난달에 마지막으로 본 너구리도 다른 곳으로 서식지를 옮겼으나 회귀 본능에 의해 잠시 찾아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밤 11시가 넘을 무렵 마루 휴게소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광장 휴게소 방향 삼거리 위쪽에 위치한 돌무지쪽으로 찾아갔다. 돌무지는 예전 너구리들의 주근거지가 됐던 곳으로 이곳에서 새끼도 낳고, 집단 생활을 즐겼다. 손전등을 켜고 돌 사이사이를 아무리 비춰도 너구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으며, 곳곳에 이들이 다닌 흔적이나 배설물도 없었다.

날짜가 바뀔 무렵 두류공원을 뒤로 하고, 최근 너구리가 자주 발견됐다는 제보가 있었던 동구 신암공원으로 향했다. 너구리가 제일 좋아한다는 양념 통닭을 주문해 공원 으쓱한 곳곳에 던져 놓았다.

새벽 1시가 지날 무렵 취재팀과 함께 있었던 김광운(22·대학생)씨가 나즈막이 말했다. "저기 너구리 아니에요?" 잠이 오지 않아 공원에 바람쇠러 왔다는 김씨가 동부도서관 뒤편에서 공원으로 올라오고 있던 너구리 2마리를 발견한 것.

너구리 두 마리는 암수 한쌍인데 암컷 너구리는 한눈에 임신 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 양념통닭을 던져주니 수컷은 이를 경계해 가까이 오지 않았지만 암컷은 취재진 가까이 와서 통닭 6, 7조각을 다 먹어치웠다. 새벽 2시가 넘어서는 배가 불렀는지 암컷 너구리도 사라져,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이날 밤샘 취재에서 일단 두류공원 너구리들은 자신들의 서식지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떠났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울러 너구리들은 이날 확인된 신암공원을 비롯해 수차례 목격했다는 제보자가 있었던 앞산공원 등지에서는 살고 있음이 드러났다.

하지만 떠나지 않는 궁금증과 아쉬움은 그대로 남아있다. '두류공원에서 6년 이상 잘 살던 너구리들이 왜 최상의 서식지였던 돌무지를 버렸는지, 그리고 척박한 도심의 작은 공원에 임신한 너구리가 살고 있는지….'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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