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통] '스타워즈'

입력 2010-05-08 07:49:27

어버이날이 있는 이맘때만 되면 이성복 시인의 '포리도 꽤 이쁜 곤충이다'라는 시가 생각난다. '포리'는 경남 통영, 고성 일대에서 불리는 파리의 다른 이름이다.

할머니 산소를 찾아가는 길에 여러 번 숨을 몰아쉬며 시동 꺼진 중고차처럼 멈춰 섰던 아버지. 그 뺨에 앉은 파리를 보며 시인은 파리도 꽤 예쁜 곤충이라고 적고 있다. 파리가 예쁠 리가 있나.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에둘러 말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한때 자식들에겐 미움의 대상이다. 아들에겐 특히 더하다. 아버지는 극복의 대상이고 어머니를 두고 벌이는 수컷의 경쟁 대상이라고 심리학에서 분석하고 있을 정도다. 그래서 아버지와의 대결, 곧 '부권의 부정'은 인간의 숙명적인 대결점이 된다.

마치 그리스 신화의 제왕 제우스의 운명처럼 말이다. 제우스의 아버지가 크로노스다. 크로노스는 누이 레아를 아내로 삼았는데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 하데스, 포세이돈, 제우스 등 6명의 자식이 태어났다. 크로노스는 자기 자식에게 지배권을 빼앗긴다는 신탁 때문에 태어난 자식을 차례로 삼켜버렸다. 마지막 제우스가 태어났을 때 레아는 크로노스를 속여 돌을 삼키게 함으로써 제우스를 구한다. 그리고 크레타 섬의 동굴에 숨겨 키워 마침내 아버지를 추방하게 된다.

1960년대 백남준은 현대 음악의 전설적인 존재인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며 구질서와의 단절을 염원했다. 헤르만 헤세 또한 '데미안'에서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구태를 깨지 않고는 새로운 살이 돋아나지 않는다. 여기서 구태나 알의 껍질은 곧 아버지의 존재로 대변된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라캉은 아버지와의 대결을 통해 자아가 형성된다고 봤다. 무의식이라는 옛 세계를 아버지를 통해 깨고 드디어 자신의 세계를 열어가는 것이다.

조지 루카스의 SF영화 '스타워즈'가 아직도 회자되는 것 또한 부자간의 대립 때문이다. '내가 네 아비다'(I'm your father)는 '스타워즈'의 가장 충격적인 대사다. 제거할 수밖에 없는 악의 화신, 숙적이 바로 나의 아버지라니. 이 혼돈과 혼란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아버지에 대항하는 것은 한국의 정서로는 용납되기 어려운 일이다. 도발적이고 발칙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온갖 무예에 능통한 홍길동이 '호부호형'을 엎드려 애원하던 것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비록 잘못을 저지른 아버지라도 감싸고, 따르는 것이 아들의 도리이거늘, 거기에 맞서 대항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본능적인 감정은 늘 수면 속에 잠복해 있다가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의 나이가 되었을 때, 더 늙은 아버지의 뺨에 붙은 파리가 예쁘게 보이는 것 아닐까.

김중기 객원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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