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어머니의 가난한 선물

입력 2010-05-07 10:57:29

"나무들은/ 난 대로가 그냥 집 한 채/ 새들이나 벌레들만이 거기/ 깃들인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면서/ 까맣게 모른다/ 자기들이 실은/ 얼마나 나무에 깃들여 사는지를!" 이는 정현종 시인의 시로, 나는 이 '나무' 대신에 흙이나 고향, 혹은 어머니를 넣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나날이 피곤해진 우리들의 몸과 정신은 거기 나무인, 어머니(흙, 고향)의 품에 깃들여 얼마나 큰 위로와 용기를 얻고 살아가는지 모른다.

내일은 어버이날이다. 구미 비산동 선산, 낙동강이 굽어 보이는 곳, 어머니 무덤을 찾아가 술도 뿌리고 잡풀도 뽑고, 이야기도 좀 나누고 돌아오고픈데, 어머니 무덤은 거기 없다.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오고 주민들의 발길이 잦아지자 몇 년 전 종중에서 도개면에 납골당을 짓고 모두 거기로 옮겨갔다. 아파트 같은 납골당 속 제각각 하얀 백자 속에 들어앉은 유골가루는 고즈넉하다.

어머니는 돌아가시면서, 돈 이천여만 원과 엄마가 부치던 밭 330여㎡(100여 평)를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가셨다. 돈 이천여만 원은 자식들이 틈틈이 준 용돈을 아껴 모은 것으로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손자손녀들 세뱃돈이랑 용돈 주랴, 먼 길 온 친척들 차비 주랴, 경로당 다니랴, 소비가 적지 않았을 것인데, 생각해 보면 자신을 위해서는 더운 여름날 얼음과자도 제대로 사 드시지 않은 것임에 틀림없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 구미에 사는 세 딸을 밭으로 불러, 고구마 모종 내는 법과 콩 농사를 가르쳐 주셨다. 딸들이 농자금을 내 비료도 사며 즐겨 짓는 농사는 올해로 삼 년째다. 꿀맛 같은 호박고구마를 캐는 날은 우리 칠 남매 내외가 다 모여 들에서 술잔도 나누며 수확의 기쁨을 누린다. 첫해는 일도 안 한 내게까지 고구마 세 박스가 배당되었다. 어머니의 선물이라 이웃과 나누어 먹었다. 여든둘에 가신 어머니는 음력 구월 하순이 생신이신데, 이날 우리가 모이면 콩이 박힌 찰떡과 어머니께서 몸소 농사지은 고구마를 비롯하여 콩, 참기름 등을 형편에 맞춰 나누어 주셨다. 그리고 계절이 좋아 우리 남매들은 일박 여행을 곧잘 떠나기도 했는데, 어머니 돌아가시고 난 뒤는 더욱 결속감을 느끼며 치르는 행사가 되었다. 지난 11월에는 칠보산 휴양림에서 일박을 하고 안동을 거쳐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 하면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젊은 시절 엄마는 이 노래를 즐겨 불렀다.

쌍금 쌍금 쌍가락지/ 호작질로 닦아내여

먼데 보니 달일레라/ ◆에 보니 처잘레라

그 처자 자는 방에/ 숨소리가 둘일레라

홍둘바시 오라버님/ 거짓말씀 말아주소

동남풍이 딜이부니/ 풍지 떠는 소릴레라

(생략) / 앞산에도 없다 하고

뒷산에도 없다 하고/ 연밥 밑에 있다 하소

구미 선산 지방의 이 구전 민요는 그 당시 내 언어의 한계에 의해 다소 변형되었을지 몰라도, 어릴 때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달이 떠오르고, 어머니 얼굴이 달처럼 멀리서 아름답게 그려지고, 한 처녀가 왜 연밥 밑에 있을까? 하는 아리송함, 연밥 밑이 주는 고적함. 사랑이 물에 빠져 죽는 자결로 끝나는 한의 정서에 충분히 감염되었다. 그리하여 달과 연밥 밑이라는 죽음의 이미지와 승화된 연꽃의 이미지에까지 서서히 가 닿았다 할까.

문득, 엄마의 공간이면서 딸들의 공간인, 동쪽으로 난 봉창이 있는 건넛방이 떠오른다. 두 짝의 농이 있고, 낮은 시렁이 있는 방. 엄마는 향기 나는 풀, 궁기(궁궁이)를 유난히 좋아하셔 농 속에도 넣어두고, 쪽진 머리에도 곧잘 꽂고 다니셨다. 지금도 친정에 가면 화장실 문에 그 궁궁이가 매달려 있다. 어머니는 비 오는 날, 사각으로 접힌 비접을 농 밑에서 꺼내 펼쳐 놓으시고 머리카락을 가리시고, 이마의 잔털을, 실을 꼬아 뽑고 계셨다. 모처럼 어머니의 한가하신 모습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딸들은 엄마의 옷 하나씩을 갖기로 했는데, 나는 엄마의 염주와 노래 가사가 적힌 노트 한 권과 함께 빳빳하게 풀을 먹인 베적삼을 하나 가져왔다. 한두 번 걸치다가 농에 넣어두었는데, 혹 무거우실까봐 서랍의 맨 위쪽에 얹어 두었다.

박정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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