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경쟁시대에 '총장 직선제'가 최선인가?

입력 2010-04-30 07:19:16

영남대 재단이 총장 직선제 폐지를 추진하면서 대구권 대학가에 총장 직선제를 둘러싼 논의가 다시 점화될 전망이다.
영남대 재단이 총장 직선제 폐지를 추진하면서 대구권 대학가에 총장 직선제를 둘러싼 논의가 다시 점화될 전망이다.

대학가에 '총장 직선제 존폐'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영남대 재단인 영남학원이 최근 이사회를 열고 직선제인 총장 선출 방식을 간선제로 변경키로 정관을 개정한 때문이다. 계명대에 이어 영남대까지 총장 직선제를 폐지키로 하면서 대구권 주요 대학 중 총장 직선제를 유지하는 곳은 경북대와 대구대 두 곳만 남게 됐다.

◆대학의 자율성과 민주화의 상징 '총장 직선제'

총장 직선제가 도입된 시기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다. 사회 곳곳에서 민주화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나오면서 대학가에도 정부나 재단에서 임명한 총장을 거부하고 직선 총장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 1988년 계명대에서 전국 첫 직선으로 신일희 총장을 선출한 것을 시작으로 경북대와 영남대, 대구대 등 4년제 대학과 일부 2년제 대학까지 총장 직선제를 잇따라 도입했다.

총장 직선제 도입은 대학가에 상당한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정부나 재단이 갖고 있던 학사 운영 주도권이 대학 구성원들에 의해 결정되는 '대학 자치'가 시작됐다. 헌법상 대학의 자율성 보장을 최초로 실천한 것.

대학 관계자들은 "정부나 재단에서 일방적으로 총장을 임명하던 시절에는 교수 임용이나 학사 운영 등에 있어 외부 영향력이 개입하고 이로 인해 교수나 학생들과 잦은 충돌이 빚어졌다"며 "총장 직선제로 인해 대학의 자율·자치성은 확실한 기반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총장 직선제의 그늘

대학이라는 좁은 조직내에서 이뤄지는 총장 투표는 파벌 조장과 상대 비방, 돈과 조직 동원 등 '한국적 선거 문화'의 폐해가 그대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선거를 위해 조직을 구성하고 표심을 얻기 위해 '돈'이 뿌려지고 타 후보의 약점을 들춰내기에 주력하는 등 일부 대학 총장 선거가 대학의 건전성을 흔들기 시작한 것.

모 대학 교수는 "직선 총장이 되기 위해서는 4년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며 "총장 선거가 끝나면 바로 다음 선거를 위해 후보들이 뛰기 시작하며 이로 인해 대학 조직내 갈등과 반목이 되풀이 된다"고 말했다.

특히 일부 대학의 '금권 선거'는 국회의원이나 지방 선거의 '도'를 휠씬 뛰어넘는다.

골프나 식사 접대는 물론 신규 임용 교수에게 선물을 보내거나 교수들의 회갑이나 자녀 결혼식 등에 관행을 뛰어넘는 돈이 뿌려지고 있는 것.

총장 선거 이후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선거 과정에서 자연스레 이뤄진 대학내 파벌의 기득권 유지와 이에 대한 반발, 논공행상식 보직 나누기가 일반화되면서 총장 직선제가 '대학 경쟁력'의 저해 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차원에서도 총장 직선제 폐지는 해묵은 과제가 됐다. 교과부는 직선제 총장 선출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지난 1996년부터 국립대에 간선제 도입을 추진해 오고 있으나 교수회 등의 반발로 무산돼 왔다.

◆'생존 경쟁'에 있어 '총장 직선제'는

모든 대학의 화두는 '경쟁력 강화'다. 저출산의 영향으로 신입생 수가 줄어들면서 '생존 경쟁'이 시작됐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학의 '자기 개혁'이 무엇보다 필요한 과제가 된 것. 하지만 대학 구성원들에 의해 선출된 총장은 '자기 개혁'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직선제 폐지를 주장하는 일부 교수들은 "총장 직선제는 학사 운영의 자율성과 교내 민주화라는 과제가 필요한 시기의 제도"라며 "21세기 대학에서 총장 직선제는 '제 기능'을 다한 존재"라고 지적했다.

실제 직선제 총장은 자율성 보장이라는 뚜렷한 장점도 있지만 유능한 외부 인사의 총장 영입이 힘들고 학교 발전을 위한 '자기 희생'도 유도하기 힘들다는 평이 높다. 최근 대학가에 불고 있는 '교수 연봉제'를 보면 총장 직선제의 '유무'가 뚜렷히 드러난다.

계명대와 대구가톨릭대 등은 올해부터 대학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교수 업적 평가에 따라 연봉을 최대 두배 이상 차등을 두기로 했다. 능력 있는 교수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한편 무능 교수에 대해서는 사실상 '퇴출'을 유도하겠다는 방안이다. 그러나 직선제 총장 대학에서는 퇴출을 기반으로 한 '연봉제 도입'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임명제나 간선제 총장 체제는 정부나 재단의 영향력 강화에 따른 대학 자율성 저해와 소수 집단의 장기 집권에 따른 획일화 등 부작용이 나타나기 쉽다. 또 직선제는 선거를 통해 다양한 의견과 목소리가 반영되고 후보들의 발전적인 공약들이 당선 후 실천으로 이어지면서 대학 경쟁력 확보의 또다른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대학 관계자들은 "총장 직선제나 임명제 모두 뚜렷한 장·단점을 갖고 있다"며 "총장 임명 방식을 둘러싼 갈등의 배경이 예전에는 학내 기득권 싸움의 측면이 강했다면 요즘은 생존 경쟁에 내몰린 대학들의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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