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계에서는 단 한 번의 교미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종도 있다. 암컷 금파리는 짝짓기하는 동안 수컷을 잡아먹는다. 그러나 사랑과 목숨을 맞바꾸고 싶지 않은 수컷 금파리도 있다. 이런 녀석들은 먹이를 선물로 바쳐 환심을 산 뒤 암컷이 먹는 데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교미를 하고 도망을 간다. 어떤 녀석은 내용물보다 포장이 더 효과적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먹이를 고치로 포장해서 암컷에게 건네는 것이다. 암컷이 고치를 푸는 동안 교미를 하고 도망도 갈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개중엔 포장만 두껍게 만든 빈 고치를 선물로 바치는 약은 녀석도 있다. 선물 꾸러미를 풀어본 암컷이 속은 사실을 눈치챘을 때 수컷은 이미 용무를 보고 줄행랑을 놓은 뒤다. 수컷들의 속임수가 반복되자, 선물로 받은 것이 빈 고치가 아닌지 흔들어 검사하는 암컷들도 생겨났다. 수컷들의 속임수도 업그레이드된다. 자신의 배설물을 고깃덩어리 무게만큼 적당히 담아 포장한 가짜 선물 꾸러미를 전하는 녀석들이 등장한 것이다.
암수 금파리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 기막힌 게임에서 나타나는 권모술수는 인간 세상 뺨을 친다. 그러나 자연계에서 암수 관계가 금파리같이 살벌한 경우는 매우 드물고, 대부분의 종에서 암수 관계는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형성된다. 인간 세계에서도 경제'사회'외교 등 각종 국가 관계를 지탱하는 근간은 상호 신뢰다. 합의된 룰을 지키지 않는 파트너와는 거래를 할 수 없다. 특히 신뢰가 전제되어 있지 않은 경제 행위는 사기이거나 수탈일 뿐이다.
북한을 경제 파트너라고 쳐 준다면 우리는 유례없이 고약하고 예의 없는 상대와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한반도에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남북 경협이 시도된 지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건만, 북한은 최소한의 신뢰조차 담보할 만한 경제 파트너가 아니라는 냉엄한 현실과 조우하게 된다.
최근 들어 북측은 금강산 관광지구 내 민간 부동산을 몰수'동결하겠다며 생떼를 쓰고 있다. 이 때문에 대북사업에 거액의 투자를 한 현대상선과 현대아산이 경영난을 겪고 있다. 북측의 어깃장을 보면서 그들은 남측을 경제 파트너가 아니라, 봉 또는 사기 행각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런 북측이 툭하면 볼모로 잡는 것이 남한의 경제다. 수도 서울로부터 사정거리 안에 배치되어 있는 대포동 미사일은 그 존재만으로도 '코리안 리스크'를 만들어낸다. 한 달 전 천안함이 서해에서 침몰됐을 때 당장 걱정부터 되는 것은 국내 금융시장이었다. 북한의 소행이라면? 투자자들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천안함 침몰의 원인으로 현재까지는 버블 제트에 의한 외부 충격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다. 아직 증거가 명확히 나타나지 않았지만 북측 소행으로 밝혀진다면 정부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떤 대응 카드를 쓸 것인가. 현재로서 정부 차원의 대응 방안은 UN 안보리 회부나 경협 중단 등이 될 수 있겠다.
정작 우려스러운 것은 일부 정치인과 보수언론, 극우인사들의 무책임한 발언과 선동이다. 이들은 정부와 국민에게 '결단'을 요구한다. 꼭 집어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주문하는 '결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뻔하다. 전쟁을 하자는 것인데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그 뒷감당은 누가 할 것인가? 무수한 생명들이 희생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서울에 대포동 미사일 한 방만 떨어지면 외국자본의 탈출 러시가 있을 것이다.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을 뒤흔들 만큼 비대해진 우리나라에서 외국자본의 이탈은 곧 국가 부도 사태를 의미한다.
전쟁의 문을 여는 것은 '순진한' 평화주의자라 했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극우와 극좌다. 궤변과 왜곡, 선동을 일삼는 부정적인 이 두 극단의 결합은 사회 전체를 괴멸로 이끌 수 있고 이는 역사의 경험칙이다. 극단주의자들의 선동이 난무하는 요즘 정부라도 냉정을 찾았으면 한다. 혹여나 정치적 악재를 덮을 양으로, 혹은 다가오는 6'2지방선거에서 바람이나 만들어 볼 요량으로 천안함의 비극을 놓고 주판알을 튕기지 말았으면 한다. 단호하되 냉정한 정부의 대처를 주문한다.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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