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의 도시는 크게 세계도시(World City), 지역도시(Regional City), 국내도시(Local City)로 구분된다. 세계도시는 그야말로 세계의 중심 역할을 하는 도시로서, 보통 세계금융과 경제의 허브인 뉴욕, 도쿄, 런던을 일컫는다. 지역도시는 북미나 유럽, 동남아 등 특정 경제권에서 중심 역할을 하는 도시이다. LA나 프랑크푸르트, 홍콩, 싱가포르 등을 들 수 있다. 국내도시는 한 국가 내에서 지방중심도시 역할을 하는 도시인데, 부산, 대구, 광주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위상은 어디쯤 될까. 국내도시의 한계는 넘어선 것 같지만, 아직 세계도시는 물론 아니고, 후한 점수를 주어 오사카, 상하이, 베이징 등과 함께 동북아의 지역도시 정도가 아닐까 싶다.
서울시는 홈페이지 첫머리에 '맑고 매력 있는 세계도시 서울'을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환경적으로 깨끗하고, 전 세계인을 끌어들일 만한 고유한 매력을 가진 세계 초일류도시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사실 서울이 세계도시의 반열에 들어간다면야 지방민들도 대한민국 국민인 만큼 자랑스럽지 않을 리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즈음 서울은 S라인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처녀처럼 다이어트와 외모 가꾸기에 한창이다. 청계천 복원으로 부러움을 사더니, 오세훈 시장은 광화문 광장에서 세계 스노보드대회를 개최하였다. 한강르네상스계획으로 한강변을 단장하고, 지하고속도로를 위시해 세계에 자랑할 만한 명소들을 가꾼다고 한다.
다이어트를 하려면 군살을 빼야 하고,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한다. 80년대 이후 서울시내에는 공장이 다 없어졌다. 국가공단이었던 덕택에 마지막까지 남았던 구로공단은 어느새 첨단 벤처기업들로 꽉 찬 '디지털 밸리'로 변신했다. 이제 서울은 첨단제조업도 'No, Thank you!'다. 인구 늘어나는 것도 싫어 수도권 신도시를 만들어 사람들을 내보낸다. 강북은 뉴타운개발로 저소득층을 내보내고, 중산층들의 보금자리로 만들려고 한다. 노무현 정권 시절 강남을 잡으려고 갖은 수단을 동원했지만, 강남의 집값 땅값은 오르기만 하는 '강남불패'의 신화가 만들어졌다.
결국 서울은 대한민국 모든 분야의 좋은 것을 독식하고 있다. 대통령도, 재벌총수도, 은행장도, 심지어는 시인, 화가, 음악가 등 최고의 예술인도 모두가 서울에 모여 살고 있다. 다이어트를 통해서 뭐든 좋은 것은 서울로 끌어들이고, 신통찮은 것은 밖으로 내몬다는 편이 적절하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것만 골라 먹는 서울이 파라다이스가 되고 있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가장 골치 아픈 문제는 교통이다. 9개 노선에 300㎞가 넘는 지하철과 크고 작은 고속화도로들에도 불구하고 교통문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인구의 과도한 수도권 집중과 서울권역 확대로 인한 교통수요 및 통행거리의 증가가 근본 원인인데, 이것은 외면한 채 막힌 곳을 뚫는 대증요법에만 의존하니 해결이 안 되는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작년 9월 법원행정처가 낸 사법연감에 의하면 성범죄와 경제범죄 사건이 가장 많이 접수된 곳이 서울중앙지법이었다. 이는 서울 인근 수도권 도시가 강력범죄 발생 상위를 점하고 있다는 경찰청 자료와도 맥을 같이한다. 말하자면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의 과도한 인구 및 부(富)의 집중이 범죄 등 엄청난 부작용을 유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론리플래닛(Lonely Planet)이라는 세계적인 여행 정보 책자가 서울을 세계 최악의 도시 중 3위로 지목해 서울시와 우리나라에 경종을 울린 적도 있다. 서울시는 이에 발끈해 항의하고 수정을 요구하는 등 법석을 떨었지만, '획일적인 아파트 건물' '심각한 환경오염' '영혼이 없는 도시' 라는 평가는 우리 모두 귀담아들어야 한다.
설령 서울이 교통, 범죄 등등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서 지상의 낙원과 같은 도시가 된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이다. 우리나라의 다른 도시들이 피폐해져 서울과의 격차가 벌어질 때, 과연 세계인들은 서울을 뉴욕이나 도쿄와 같은 반열에 올려 놓겠는가? '대한민국의 선진화'와 '세계도시 서울'은 서울과 지방도시들이 더불어 발전하고, 서울사람들과 지방사람들이 다 같이 행복하게 살 때만이 가능한 우리 모두의 '꿈'이다.
대구경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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