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 '法대로 하면 망한다'

입력 2010-04-26 11:06:14

대한민국 건국 이후 47번째 맞는 법의 날(25일)을 보내며 한 번쯤 되뇌어 볼 만한 말이 있다.

'법(法)대로 하면 망한다.'

법을 지키고 법률이 정한 정의와 가치대로 따라가는데 흥(興)하면 흥했지 망하긴 왜 망하느냐는 물음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살이를 깊이 들여다보면 '법대로 하자'는 말이 경우대로, 똑바로 하자는 뜻보다는 파괴적인 분열과 갈등을 낳는 말임을 알게 된다. 조그만 골목 시비에서도 할 말이 막히고 논리가 달리면 판을 엎어 버리고 법대로 하자며 돌아서 버리는 경우들을 수없이 본다.

그처럼 언뜻 합당해 보이는 '법대로 하자'란 말은 실은 평화로운 합의나 대화를 통한 협상을 하고 싶지 않을 때나 자기 욕심대로 안 될 때 주로 쓰여진다.

어떤 다툼과 갈등에도 내 쪽이 양보하면 쉽게 문제가 풀리는 열쇠가 숨어있는 법인데도 대부분의 다툼은 제 맘대로 안 되면 곧바로 '법대로 하자!'며 돌아서서 투쟁, 반목으로 맞선다. 결국 '법대로 하자!'는 말은 법 정의대로 상식과 염치를 똑바로 지키자는 말이 아니라 화합이나 상생의 정신이란 눈곱만큼도 없는 이기적 몽니요 판 깨기인 셈이다.

제 맘대로 안 되고 밀린다 싶으면 법대로 하라며 판을 깨는 부류들일수록 막상 법이 내 편을 안 들어주면 또 다른 몽니를 부린다. 패소 당사자나 지지 세력이 판사 집 앞에서 집단 시위를 벌이거나 그런 폭력을 나무라는 언론을 공격하는 패거리들이 그런 경우다.

국민이 이해하기 힘든 법을 만들어 내고는 '법대로'라 우기는 국회나 입으로는 '법대로'를 떠들고 뒷구멍으로는 기업인들의 호주머니에 손을 넣는 일부 '스폰서 검사'들의 추문 역시 예외가 아니다. 전관예우니 유권무죄, 이념 재판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일부 사법부의 국민 불신 역시 자기 입맛에만 맞춘 '법대로'를 했기 때문에 비롯됐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고, 심판하는 권력 기구들이 불신을 뿌리니 백성들의 저잣거리에도 툭하면 법대로 하라며 퉁기는 갈등과 불신이 오염되지 않을 수 없다.

간첩이 영웅으로 뒤바뀌고 중학생에게 빨치산 교육을 시키는 이념 교육이 무죄가 되는 '이상한 법대로'를 보여주면 평민들 또한 웬만한 것쯤 '법대로 해 봐'라고 버티는 배짱과 억지를 부리게 되는 것이다.

법을 만지는 윗물은 윗물대로 법 다루기를 뭣같이 하고 이기 집단들은 그들대로 수틀리면 법대로 하라고 버티는 비타협의 억지가 만연된 풍토 속에서 상생의 준법정신 따위는 더더욱 기대할 수 없다. 법 대신 양심과 염치와 상식이 먼저 통하는 세상을 못 만들어 내면 다 함께 망하게 되는 길뿐이다.

과장된 헛말이 아니다. 경찰청이 조사한 경찰의 법 집행에 대한 국민 신뢰는 D학점(63.5점)이었다. '법대로'를 집행하는 공권력의 신뢰도가 그 정도다. 국민들의 법 준수 점수는 더 참담하다. 52점, 낙제다.

나라의 준법 수준 점수는 어떤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 30개 회원국 중 한국은 27위, 말 그대로 꼴찌 수준이다. 그런데도 사사건건 시빗거리만 생기면 '법대로 하자'는 말부터 먼저 나오고 법대로 해보자고 떠들면서도 거꾸로 '스폰서 검사' '이상한 무죄'들이 쏟아져 나오는 게 이 나라의 실체다.

좋은 법 만들고, 제대로 지키고, 올곧게 판결하자는 법의 날, 다 좋다. 그러나 그런 허울뿐인 판박이 식 기념일보다는 이성적 협상과 감성적 토론을 통해 양식과 통합을 이끌어 낼 줄 아는 깨인 국민정신이 더욱 절실한 법의 날이었다.

국민 화합 없이 법만 서슬 푸르고, 만사를 법으로만 지탱한 나라치고 번영했던 국가는 없었다. 모든 것을 법대로 하자고 다투는 사회나 '법대로' 에 앞서 시민의식과 통합을 먼저 이끌어 내지 못하는 나라는 반드시 쇠퇴한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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