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의 기쁨과 예술가 사명 '절묘한 웅변'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
작가: 이쾌대
재료: 캔버스에 유채
크기: 72×60㎝
연도: 1948~49년 무렵
소장: 개인(이한우) 소장
옥색 두루마기에 중절모를 쓴 한 남자가 양손에 붓과 팔레트를 들고 수려하게 펼쳐진 아름다운 농촌 풍경을 배경으로 서 있다. 굵고 짙은 눈썹 아래 크고 형형한 눈빛은 깊은 호소력을 띤 채 부동의 자세로 전면을 응시하고 있는데, 미풍에 날리는 옷고름 한 가닥과 작은 구름이 끝없이 피어오르는 듯 보이는 푸른 하늘의 조화에서 미묘하지만 역동적인 움직임을 느끼게 한다. 아주 독특한 인상의 이 그림은 이쾌대가 그의 30대 중반쯤 그린 자화상이다.
반신상 인물의 어깨너머로 멀리 경치를 넣은 양식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나 라파엘로의 인물화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도다. 손에 든 붓으로 모델의 신분을 드러내는 고안 역시 르네상스 초상화의 전형적인 방식을 차용했다. 힘찬 팔뚝과 당당한 자세는 화가로서의 근대적인 자의식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며, 작가의 세계관을 제작 태도와 작품 내용에 이렇게 은유적으로 나타낸 점은 16세기 종교개혁의 혼란기 속에서 독일의 알브레히트 뒤러가 자신의 사명을 예수의 모습에 빗대 그렸던 자화상의 상징주의를 닮았다.
배경의 풍경을 보면 아득히 구름에 잠긴 연봉들은 전통 산수화를 방불케 한다. 낮은 산에 둘러싸인 마을에는 꽃나무가 한창이다. 저수지마다 물이 가득하고 들길에는 새참을 나르고 물동이를 이고 가는 여인들의 걸음이 분주하다. 온통 푸른 녹색은 희망찬 미래를 상징하려는 작가의 메시지를 반영하는데, 색채는 그림의 형태에 앞서 감정에 다가온다. 광복의 새봄을 맞은 기쁨의 표현과 그러나 곧 혼란스런 해방공간에서 조국의 현실을 직시하려는 자세로 선지자처럼 화가의 역할을 말없는 웅변으로 전하고 있다.
이 그림은 다소 그래픽적인 요소로 전체적으로 평면적인 인상을 준다. 배경과 인물의 관계가 확연한 원근의 차이에 의해 묘사돼 있지만 그것은 크기에서 비롯된 것이지 서양의 명암법에 의한 깊이 있는 환영을 시도하지 않고 있다. 인물의 모델링에서도 양감을 크게 부여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배경에 점경으로 표현되는 인물이나 수목의 형상들이 더 이상 인상주의 경향의 작품에서처럼 색점으로 빛속에 녹아들어가 있지 않다. 윤곽선이 강조된 채색과 선묘의 방식에서 동양화의 필선이 느껴진다. 이것이 바로 작가의 형 이여성이 주장했던 동양화의 현대화 방식을 유화에 적용시킨 결과다. 이 그림을 양식으로 말한다면 전통 서화를 근대화시켰으며, 서양화를 전통에 접목시켜 우리의 정신과 현실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이쾌대는 소재 선택이나 주제에 대한 접근방법에서 식민지 시대 미술의 특징이던 소재주의나 관념적 '향토색'을 뛰어넘어 우리 전통 서화의 평면적인 채색법이나 선묘적인 특징을 탐구한 새로운 양식의 시도로 나아갔다. 일찍이 유럽 회화의 전통을 두루 참조한 그는 서양의 미술을 동양적 화법과 결합시켜 현대적인 조선의 새로운 그림양식을 추구했었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수동적인 상황에서 양화의 도입을 경험한 우리 미술에 주체성을 회복시키려는 아이콘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의 손에 쥐어진 유화 붓 자루들의 끝은 하나같이 수묵화 붓의 모필로 그려졌고, 팔레트를 쥔 한 손은 서양의 데생으로 보면 좌우가 맞지 않게 그리고 있다. 마치 김홍도의 '씨름' 그림에 나오는 뒷손을 짚은 한 인물의 손이 그런 것처럼.
김영동·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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