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맹자와 맹자절문

입력 2010-04-21 10:52:51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은 맹자를 싫어했다. 문묘에서 맹자를 빼라고 명하는가 하면 유삼오를 시켜 '맹자'를 다시 쓰도록 했다. '맹자'를 손질해 다시 만든 것이 '맹자절문'(孟子節文)이다. 주원장이 맹자를 배척한 이유는 단순했다. "백성이 귀하고, 사직이 그 다음이며, 군주는 가벼운 존재다"라는 진심장(盡心章)의 구절 때문이다. 백성을 으뜸으로 여기고 황제를 하찮게 본다면 자칫 혁명을 부추겨 왕조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명 왕조의 입장에서 보면 군주의 위상을 드높여 정치 기반을 다져가야 하는 시점에서 이를 부정하는 맹자의 사상은 화근이다. 그러니 식자층이 맹자를 들먹이고 백성들이 맹자의 말에 솔깃하지 못하도록 틀어막는 억지를 부린 것이다.

조선의 개혁 군주 정조는 맹자를 탐독했다. 일일이 메모를 해가며 '맹자'를 거듭해 읽었다. 신하들에게 질문을 던져 맹자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제대로 모르면 학문에 더 힘쓰라며 다그쳤다. 맹자를 통해 이상적인 왕도정치의 가능성을 본 정조와 불온한 이데올로기로 여긴 주원장의 시각은 극명히 갈라졌다.

5개 교원단체 소속 교사 명단 공개를 두고 찬반 논란이 뜨겁다. 전교조는 자신들을 겨냥한 불순한 의도의 공개라며 반발하고 있다. 보수층에서 전교조 교사의 면면을 공개해 이념의 낙인을 찍으려 한다는 이유에서다. 명단이 공개돼 눈총을 받거나 이런저런 간섭으로 귀찮아질 것이라는 생각도 있을 것이다. 사생활 침해니 교사들의 개인 정보에 대한 결정권 침해니 등의 변명으로 공개를 거부해 왔다.

법원의 판단처럼 명단 공개가 법에 저촉될 수는 있다. 하지만 명단을 보려는 이들로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등 폭발적인 관심은 무엇을 말하는가. 엘리트 판사들의 이너서클인 민사판례연구회가 20일 회원 명단을 전격 공개했다. 폐쇄적인 운영으로 '사법부의 하나회'라는 비판을 받아온 이 단체는 희망자 누구든 회원으로 받아들이겠다며 공개 활동을 선언했다. 스스로 투명하게 드러냄으로써 말썽의 소지를 없애버린 것이다.

물론 전교조와 민사판례연구회의 입장과 처지가 다를 수는 있다. '맹자'의 예처럼 이는 당사자들의 관점과 선택의 문제다. 알고 싶어하는 모든 국민들에게 '맹자'를 보게 할 것인지 아니면 '맹자절문'을 줄 것인지는 그들이 판단할 몫이다. 그러나 선택의 결과는 분명 다르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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