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자신도 모르게 받는 것이 복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복은 남이 먼저 알고 '복을 받았다'는 말을 해주는 경우가 많다. 일전에 우연하게 나는 친구의 복을 발견하고 속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당사자는 아직도 그것이 복인 줄도 모르고 있다. 내가 굳이 '복 받았네'라고 말해 주지 않은 것은 그녀에게 또 다른 큰 복이 왔을 때 말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육남매의 막내며느리다. 그런데도 시어머니 집과 가까이 살다 보니 맏며느리 못지않은 일을 감당할 때가 많았다. 한 달 전쯤 그녀의 시어머니가 중풍으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몸을 거동할 수 없으니 밤낮으로 간호할 사람이 필요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맏며느리와 막내며느리가 책임을 맡아서 낮에는 맏며느리가, 밤에는 그녀가 보살피기로 했다.
입원한 지 며칠이 지나면서부터 노인에게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맏며느리가 오는 아침이면 안색이 좋지 않던 시어머니가 저녁이 되어 그녀만 나타나면 엉덩이를 들썩이고 팔을 저으며 반가워하는 것이다.
노인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었다. 낮에 맏며느리와 함께 지내는 동안 노인은 음식을 양껏 먹지 못했다. 간호하는 입장에서 매일 대소변을 받아내는 일이 꽤나 번거로웠던지 최소한의 열량 외에는 음식을 더 주지 않았던 것이다. 맏며느리는 오십대 중반으로 여기저기가 삐걱거려 자신의 몸도 건사하기 힘들다며 팔자 타령을 입에 달고 있었다.
노인은 중풍을 앓고 있었지만 젊은이만큼 식욕이 왕성했다. 막내며느리는 맏며느리와는 다르게 시어머니께 사이사이 간식을 드시게 하면서 잔소리를 곁들인 운동까지 시켰다. 그녀에게는 당장 배변을 치워야 하는 성가심보다 빠른 회복이 시급했다. 낮에 고된 직장 생활로 저녁이면 몸이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 그녀는 시어머니가 뭐든 잘 드시고 얼른 털고 일어나야 자신이 편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복은 생각지도 않은 사람에게 먼저 나타났다. 우리의 소화 과정은 적어도 한나절은 지나야 배변이 된다. 밤사이 노인이 먹은 음식은 모두 낮에 간호하는 맏며느리의 몫이 되었다. 반대로 낮 동안 많이 먹지 않은 탓으로 밤에는 막내며느리의 손을 자주 빌리지 않아도 되었다. 일을 겁내지 않고 빨리 회복시킬 마음으로 노인을 대했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복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두 며느리는 똑같은 처지의 안경을 끼고 있었지만 하나는 근시였고, 다른 하나는 원시였다.
주인석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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