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해상 패권을 놓고 스페인과 다투던 영국은 1587년 오늘 스페인 카디즈항을 공격해 30여 척의 배를 파괴했다. 이를 이끈 사람이 영국의 국가공인 해적 프란시스 드레이크다. 영국 해적에게 넌더리를 낸 스페인은 무적함대를 영국으로 보냈지만 무참히 패배했다. 이 싸움을 승리로 이끈 주인공도 드레이크다.
영국은 국민적 영웅으로 떠받들지만 그의 본질은 해적이었다. 마젤란에 이어 두번째 세계일주에 성공했지만 이 역시 해적질의 결과였다. 칠레 해역에서 스페인 보물선 카카푸에고호를 약탈한 뒤 추격을 피하기 위해 대서양이 아닌 태평양으로 달아난 것이다. 그는 약탈 뒤 안전통행증과 약탈품 명세서까지 써줘다고 한다. 다른 해적선에 걸렸을 때 무사항해를 보장하고 스페인 정부로부터 선장이 보물을 착복했다는 추궁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니 과연 '영국신사' 답다. 데본주 타비스톡의 농가에서 태어났으나 일찍부터 노예무역에 나섰다. 악명높은 노예무역업자 존 호킨스가 그의 육촌형이다. 해적질로 금은보화를 갖다바친 공로로 엘리자베스 1세에게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 1596년 파나마 해역에서 이질로 사망했다. 지금도 영국인들은 그의 이름에 '써'(sir)라는 경칭을 붙인다. 부끄럽지도 않은 모양이다.
정경훈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