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만에 찾은 부모님 묘…"이제야 인사를, 이 불효를 어찌…"
"아버지, 어머니! 60여년 만에야 부모님의 묘를 찾은 이 불효자를 용서하세요. 정말로 죄송합니다."
18일 영양군 영양읍 감천리 한 야산에 있는 한 묘지 앞에서 80대 노인이 부모의 묘를 어루만지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주인공은 영양군 청기면이 고향인 이희팔(88) 재일본사할린한인회장. 고향을 찾은 적은 한 차례 있었지만 그 무렵엔 부모의 묘를 찾지 않았기에 이날 부모의 묘를 찾은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 회장은 1943년 스무살 나이에 영양 청기면에서 일본의 노무자로 차출돼 경산에 있는 교육장에서 3개월가량 교육을 받고 일본으로 끌려갔다. 사할린 탄광에서 2년 3개월 동안 일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그 후 일본 여인을 부인으로 맞아 슬하에 2남 1녀를 두고 살았다.
사할린 탄광에서 16년간 강제노동을 한 이씨는 급여 대부분을 우편 저금 명목으로 빼앗겼다. 통장과 인장은 료장(숙소 주인)이 가지고 있었으며 저금한 사람은 실제로 얼마나 저금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는 게 이 회장의 얘기다. 이 회장은 동료 11명과 함께 일본 정부에 우편 저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지만 일본 정부는 한일협정으로 이들의 청구권도 소멸됐다고 주장했다.
해방 후 일본에 남은 이 회장은 중·소 이산가족협회장 및 사할린 거주 한국인의 국내 영구 귀국 사업을 위해 노력하여 한국에 정착촌을 만드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부모의 묘소를 참배하기 위해 50여분 정도 산길을 걸으며 이 회장은 '한오백년' '아리랑'을 부르며 눈시울을 붉혔다. "고향에 살던 젊은 시절 아리랑과 같은 노래를 많이 불렀어요. 새삼스레 젊은 시절이 생각납니다."
이 회장의 고향 방문은 '한·일 강제병탄 100주년'을 맞아 이 회장이 고국을 방문하려는 사실을 안 일본 아사히신문사의 주선으로 이뤄졌다. 이날 부모 묘소 방문에도 아시히신문 취재기자와 사진기자가 동행했다.
이 회장은 이날 지역 언론인들을 만나 이번 고국 방문의 의미를 설명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36년 동안 지배하면서 우리 민족이 겪은 슬픈 역사를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고국을 찾았어요. 위안부, 징용, 징병 등 나라 잃은 설움으로 우리 민족이 당했던 슬픔을 자라나는 세대에 바르게 알리고 국가와 국토 방위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싶습니다. 요즘 일본이 억지 주장하고 있는 독도의 영유권 주장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번에 고향을 찾았습니다."
영양·김경돈기자 kdon@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