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창석의 뉴스 갈라보기] 문학의 지방주의

입력 2010-04-17 07:32:17

수도권 집중화에 대한 비판은 숱하게 진행되어 이젠 식상할 지경이다. 사회를 이끄는 주요한 구성인자가 죄다 수도권에 몰려서 심각한 병폐를 낳고 있다는 것은 이미 논쟁거리도 못 된다. 그럼에도 수도권은 요지부동이다. 정치 단체나 거대 기업들이 서울에 몰려 있으니까 당연한 반응이기도 하겠다.

잘 드러나지 않으나 사실 수도권의 비대는 정치나 경제보다 문화 쪽이 더 심하다. 문화 수용자의 분포와는 아랑곳없이 문화 생산자의 절대 다수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일정한 하드웨어가 필요한 영화나 드라마, 혹은 연극과 뮤지컬 같은 공연예술은 그렇다 치더라도 개인 창작에 의존하는 문학이나 회화조차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여기서는 문학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물론 문학도 지극히 개인의 창작열에 의해서 생산된다. 국가나 문학 제도권이 부양은 할 수 있어도 창작에 직접 관여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상당수의 시인과 거의 모든 작가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까. 주체적이고 개성적인 작품 활동을 하는 이들이 한 지역에만 산다는 것은 예술의 자율적인 속성에 비추어보면 아이러니하다는 생각도 든다.

작가들이 사는 곳을 두고 시비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문학 생산자가 수도권에 집결되어 있는 현상은, 다른 분야에서 유발되는 폐단과 유사한 문제를 낳을 수도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자 한다. 다시 말하면 문단(文壇)의 역할이나 문학 작품을 평가하고 유포하는 과정에서 수도권의 자기 주도가 과도하게 행사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이다.

이 점을 체코 출신의 뛰어난 소설가인 밀란 쿤데라는 근년에 출간한 에서 통렬하게 지적하고 있다. "예술가에 대한 중앙의 독점적인 소유는 한 작품의 의미를 예술가가 자기 나라에서 하는 역할로 그치게 하는 작은 문학의 테러리즘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문학의 소집단적인 성향에 대한 고민은 이미 괴테나 카프카의 글에서도 보이지만 쿤데라는 문학의 '지방주의'라는 분명한 용어를 사용해서 이를 비판한다. 그에 의하면 세계문학에서 변방국인 폴란드나 체코 같은 '작은 국가'는 세계 문학을 높이 숭상하긴 하지만 자신들과 별 상관없는 낯선 것, 하늘처럼 멀리 떨어진 이상적인 대상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예술이 자신의 지방에만 속해 있는 것이고, 시선을 자신의 지방 너머로 향하는 작가들을 건방진 부류라고 생각한다.

세계 문학의 흐름과 무관하게 자신에게 속한 것만 정당하다고 고집하는 이들을 쿤데라는 문학 '지방주의'라고 칭한다. 세계주의와 반대되는 용어로 지방주의를 쓴 것이다. 이러한 문학 지방주의는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미학성(美學性)을 작품 판단의 근거로 삼지 않는다면서, 나아가 미학적 가치에 대한 무관심이 모든 문화를 지방주의로 변질시킨다고 말한다.

세상은 어디나 비슷한 모양이다. 쿤데라의 지적은 마치 우리나라 문단에서 발생하는 지방주의를 보는 듯하여 놀랍다. 물론 우리 문단도 나름의 논리와 정당함이 있다. 우리나라만의 역사성과 세대론적 가치는 세계 문학에의 추구보다 더 긴급하고 소중한 문제이기도 하다. 문학은 남이 아닌 우리가 사는 땅을 진단하고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방주의'가 전적으로 문단을 지배할 때 한국 문학의 시야는 점점 좁아지고 세계 문학과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에 대구의 송재학 시인이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했다. 지역에 거주하는 문인이 메이저 문학상을 받는 일은 극히 드물다. 송 시인도 일찌감치 탁월한 시를 계속 발표해 왔으나 50대 중반에 이르러 수상자가 되었다. 그의 수상이 이토록 뒤늦은 이유는 말할 필요도 없이 문학 지방주의가 이중적으로 행사되었기 때문이다.

송재학 시인의 수상 보도를 접하면서 한국 문단에서 폭넓게 받아들여지는 '지방주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되짚어보고 싶은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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