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정의 별의 별 이야기] 에픽하이

입력 2010-04-15 14:16:45

"우리 음악을 세계인과 나누고 싶을 뿐"

힙합그룹 '에픽하이'의 도전은 항상 새롭다. 이들은 직접 음반 레이블과 웹사이트를 만들어 음반 유통을 하기도 했고, 한국 힙합의 우수성을 알리겠다며 미국 투어 공연에 나서기도 했다.

항상 새로운 에픽하이가 이번에 또 다른 방식의 활동으로 한국 가요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지난달 9일 발매한 음반 '에필로그'(Epilogue)를 '아이튠즈'(iTunes)를 통해 공개하고 단 하루만에 힙합 부문 앨범차트에서 1위에 오른 것이다. '아이튠즈'는 아이폰과 아이팟으로 유명한 미국 애플사의 멀티미디어 재생기 겸 디지털 콘텐츠 시장 접속기다. 동시에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음원을 보유한 음원 시장이기도 하다.

이들은 전 세계의 아티스트들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아이튠즈'에서 별도의 홍보 없이 음악만으로 1위를 했다. 멤버 타블로는 즐거움 가득하면서도 예의 논리적인 말솜씨로 이번 성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미쓰라 진도 간간이 옆에서 거들었다. DJ투컷은 현재 군에 입대한 상태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죠.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이었고요. 지난 1년 반 동안 인터넷을 통해 공연을 하고 각국의 팬들을 만난 게 주효했던 것 같아요."

한국 차트에서 일찌감치 상위권을 차지한 앨범 '에필로그'는 '아이튠즈'에 이어 프랑스 음원 차트에서도 톱20에 들었고, 독일과 영국 차트에서도 톱40 안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아이튠즈에서의 성과 이후 글로벌 뉴스 채널인 CNN과 인터뷰를 했고 프랑스 TV와도 인터뷰를 했다.

"인터넷이 세계의 문을 열어줬죠. 운 좋게 세계적인 입소문을 타게 됐습니다. 실질적인 프로모션이 없어 사실 고생은 많이 했어요. 우리끼리 모든 것을 해야 했으니까요. 세계적인 스타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세계적으로 우리의 음악을 알리고 싶었고 그 노력이 인정을 받은 거죠. 우린 이슈를 만들기 위해 음악을 하는 게 아니에요. 해외 시장에 큰 관심도 없죠. 우리 음악을 전 세계 리스너와 함께 나누고 싶었을 뿐입니다."

미국에서 유학한 타블로는 알려진 대로 영어 네이티브 스피커다. 영어 가사를 쓰는 데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아이튠즈를 통해 음반을 공개할 예정이었으면 타이틀곡을 영어 버전으로 만들어 싣는 게 효과적이었을 터다. 그런데 에픽하이는 별도로 영어 타이틀곡 작업을 하지 않았다.

"해외 뮤지션들이 우리나라 팬들을 위해서 한글로 음악을 만들어 주진 않잖아요. 우리가 해외 팬들을 위해 영어 음악을 만들 이유도 없죠. 자막을 보면 되는 것이니까요. 저도 프랑스의 언더그라운드 힙합 음악을 듣는데, 가사는 못 알아들어요. 그래도 음악만 좋으면 듣더라고요. 음악은 세상 어디에서 어떤 언어로 만들든 상관없어요. 좋으면 퍼지는 거죠."

앨범 제목 '에필로그'는 '극의 마지막에 추가한 끝 대사 혹은 보충한 마지막 장면'이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단어 그대로 이번 앨범에는 미리 만들었지만 앞선 앨범에 수록되지 못했던 노래들이 담겼다. 다양한 장르의 힙합 음악이 혼재된 것이 눈길을 끈다.

"'팝'은 모든 장르의 교집합이죠. 너무 좋은 장르가 많아요. 꼭 하나의 장르로 가둘 필요가 없어요. 에픽하이의 음악이 독특해서 좋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우리의 다양한 시도 속에서 뭔가 색다른 느낌을 받으시는 것 같아요."

타이틀곡 '런'은 제목 그대로, 힘들어도 끝까지 달려가라는 메시지를 담은 노래다.

"슬프고 지칠 때, 꿈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할 때, 미친 듯이 뛰고 싶을 때 이 노래를 들으면 돼요. 빠르든 느리든 뛰고 있는 것 자체가 좋은 것이라는 얘기를 담았어요. 거기에 희망이 있는 것이고요."

에픽하이와 얘기를 하면서 '소셜 미디어'(Social Media)에 대해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자신들의 웹사이트 '맵더소울'(Mapthesoul)을 십분 활용해 팬들을 만나는 그룹으로도 유명하다. 타블로는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인 '트위터'를 잘 활용하는 뮤지션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타블로에게 트위터 얘기를 묻자 말이 많아진다.

"트위터라는 공간은 긍정적으로 잘 활용하면 좋은 매체가 되죠.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는 하나의 도구가 될 수 있잖아요. 전 제 팔로워들이 제 댓글을 받기 위해 팔로우하길 원하지 않아요. 내 생각을 공유하자는 것이죠."

타블로는 자신이 트위터에 올린 글을 기자들이 기사화하는 것에 대해 불편한 마음도 전했다.

"한번은 'RT'(Retweet:다른 사람이 올린 글을 가져오는 것)가 뭔지 모르는 기자가 'RT'한 글을 내 글인 줄 알고 기사를 썼더라고요. 트위터에서의 대화는 앞선 대화와 이어지는 것도 있기 때문에 진행되는 얘기를 다 지켜봐야 해요. 실시간으로 올라온 글을 기사화하면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소셜 미디어에 올린 글이 기사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그럼 제 생각을 편안하게 올릴 수 없게 되잖아요."

마냥 도전적이기만 한 청년 뮤지션 타블로. 그의 아이폰 뒷면엔 아내인 배우 강혜정과 찍은 사진이 예쁘게 붙어 있다. 지난해 10월 결혼식을 올린 타블로는 다음달 아빠가 된다. 군에 입대한 DJ투컷도 지난해 10월 결혼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미쓰라 진은 몇 달 전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기혼과 미혼이 섞인 그룹 에픽하이에게 올해의 계획을 물었다. 그러나 기혼멤버 타블로와 미혼 멤버 미쓰라 진의 답은 같았다.

"앨범 활동 열심히 하고 좋은 음악 만들고 그래야죠. 우린 별로 계획 세우면서 살지 않아요. 그냥 조용히 열심히 사는 거죠. 뭐."

'그냥 조용히 열심히 산다'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을 이뤄낸 에픽하이. 이들이 보여줄 다음 모습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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