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가 적정분양가 보장해야…인 허가 절차 간소화 등도 시급
대구 아파트시장이 동맥경화에 걸렸다.
불 꺼진 아파트(준공 후 미분양)는 갈수록 쌓여 가는데도 아파트를 사려는 사람은 없다. 새 아파트에 입주해야 하지만 살던 집이 팔리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서민들은 중소형 아파트의 매물이나 전세를 구하지 못해 아우성이다. 건설사들은 미분양의 덫에 걸려 아파트 분양사업에 손을 놓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와 대구시는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늘어나는 불 꺼진 아파트
입주를 시작한 지 2년 가까이 된 수성구의 한 아파트단지. 잔금 무이자 대출 등 간접적인 형태로 할인 판매하고 있지만, 절반 정도가 미분양 상태이다. 인근 A공인중개사 대표는 "중소형 평형은 대부분 입주를 했지만, 중대형의 경우 밤에 불을 켠 집을 한 동마다 손으로 꼽을 정도"라며 "정부의 양도세 감면 연장 조치도 효과가 없다. 소비자들은 지방, 특히 대구에서 당분간 양도 차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대구의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 물량은 1만1천31가구(국토해양부 2월 말 통계)로 16개 시·도 중 가장 많고 수도권(서울·인천·경기)의 3배에 육박한다. 지난 연말보다 전국에선 37가구가 줄었지만 대구는 오히려 778가구(7.5%) 증가했다. 건설업계에서 악성재고로 통하는 준공 후 미분양 물량 가운데 중대형(전용면적 85㎡ 초과)이 65%를 차지한다. 미분양 아파트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데도 중소형 아파트의 전세나 매물을 구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달서구 B공인중개사 대표는 "미분양 아파트를 팔면 건설사로부터 법정중개수수료 이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중대형 아파트를 사려는 사람은 없다"며 "대구는 경기가 오랫동안 침체된데다 소득수준이 다른 대도시보다 낮아 파격적인 할인이나 세금 혜택이 없는 한 미분양 아파트 해소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수성구 범어동 고급주상복합아파트에 입주예정인 최모(45)씨는 "살고 있는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았는데 6개월이 넘도록 구매자가 없다"며 "대출이자 부담이 늘어 아예 입주를 포기하고 새 아파트를 분양가 이하에 팔려고 하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고 했다.
◆신규 분양, 오리무중
올 연초까지만 해도 건설사들은 올해 대구에 1만여가구를 분양할 계획을 세웠다. 지난해 신규 아파트 분양 물량이 재건축단지를 포함해 6천여가구에 불과했고, 중소형이 부족한 상태여서 건설사들은 어느 정도 수요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상당수 업체들은 중소형 위주의 아파트 공급을 위해 사업계획과 설계까지 변경했다. 분양대행사 관계자들은 "지역 건설사들이 금융위기 전후 분양을 미뤘던 물량만 2만여가구에 이르는데다 부동산경기 회복 심리가 고개를 들면서 사업재개를 계획했다"며 "하지만 최근 미분양 판매가 부진하면서 대부분 업체들이 사업 시기를 미루고 있다"고 전했다. 화성산업 도훈찬 상무는 "당초 달서구 대곡드림파크 분양시기를 이달로 잡았으나 시장상황이 좋지 않아 지방선거가 끝난 뒤인 6월 중순으로 미뤘다"고 말했다.
4월 분양 계획을 세웠던 건설사의 관계자는 "'시계 제로' 상태이다. 일단 5월로 분양시기를 미뤘는데, 이 역시 잠정적"이라며 "앞으로 대구에서 아파트분양사업을 계속 해야 할지 고민이다"고 밝혔다.
◆아파트정책 실종
대구의 아파트시장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역경기 침체와 맞물려 미분양 적체→기존 아파트 매매부진→새 아파트 입주 부진→중소형 아파트 매매 및 전세난 등이 악순환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대구의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의 경우 평균 분양가를 3억원으로만 잡아도 3조~4조원에 이른다. 이는 건설업계의 유동성을 악화시키는 것은 물론 지역경제의 부담이 되고 있다.
하지만 대구시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구시는 지난해 8월 시 관계자, 건설사·금융기관·부동산업계 등의 관계자로 구성된 '주택경기 활성화 TF'를 결성했지만 지금껏 나온 대책은 취득·등록세, 양도소득세 감면 연장 건의뿐이었다. 시 건축주택과 관계자는 "중대형이 과잉공급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자체가 업체에 중대형 공급을 제한할 권한이 없다. 주택경기 침체가 심각한 수준이지만 지자체 차원에서 추진할 대책이 없어 고민이다"고 밝혔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미분양 사태는 과잉투자에 편승한 건설사의 무분별한 시장 진입과 금융기관의 PF(프로젝트파이낸싱) 남발, 그리고 지자체의 주택정책 부재 등에서 비롯됐다"며 "특히 중대형 아파트 과잉공급은 소형보다 중대형이 수익이 많이 나는 비합리적인 현실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건설사들이 분양가 상한제에 묶여 치솟는 땅값을 보전할 방법이 없자, 상대적으로 분양가 규제를 덜 받는 중대형 아파트 공급을 늘렸던 것이다.
황영채 램코부동산투자자문 대표는 "지자체들이 중소형 평형에 대한 가격 통제를 가혹하게 했기 때문에 건설사들이 채산성을 맞추기 위해 대형을 많이 공급하게 된 것"이라며 "미분양 아파트도 그렇지만, 건설사들이 신규 사업을 못하고 중소형 아파트이 부족한 것은 주택시장은 물론 지역경제 전체로 봐서도 심각한 문제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택경기 회생과 중소형 아파트 공급을 위해 지자체, 금융기관, 건설사 등이 협력해 ▷중소형 아파트에 대한 적정 분양가 보장 ▷중소형 일정 물량 공급을 전제로 한 적극적인 PF대출 ▷인·허가 절차 간소화 등의 대안을 제시했다.
김교영기자 kimky@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李대통령, 남아공 대통령·호주 총리와 정상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