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희곡대본을 쓰는 작가와 그 대본을 검열하는 검열관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한 편을 보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모두가 웃음을 잃어버린 비극의 시대에 극단 '웃음의 대학'의 전속 작가는 힘든 시대를 살고 있는 관객들에게 웃음을 전할 수 있는 작품을 공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 희극 따위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냉정한 검열관은 대본 속의 웃음이 있는 장면은 모두 삭제하라고 강요합니다. 공연 허가를 받기 위해 검열관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이며 대본을 수정해 가지만 그 대본 속에는 또 다른 웃음이 존재하고 있고 검열관은 웃음의 요소를 삭제하라는 요구를 거듭합니다.
매번 새로운 대본을 써 가는 작가에게 주변 사람들은 바람직하지 않은 권력에 순응하는 사람이라고 비난하지만 작가는 그래도 괜찮다고 합니다. 다만, 웃음을 줄 수 있는 공연을 무대에 올릴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희극 작가에게 웃음이 없는 대본을 써 오라는 무리한 요구에도 작가는 한 번도 공연을 포기한다거나 웃음이 없는 대본을 써오지 않습니다. 검열관이 요구한 웃음의 요소를 없애면서 새로운 웃음을 만들어냅니다. 그 웃음은 처음의 그것보다 더 재미있는 대본이 됩니다. 작가는 말합니다. 그것이 자신이 해야 하는 역할이라고.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는 검열을 통과해야 하지만 검열관의 요구를 받아들여 웃음의 요소를 삭제만 한다면 그건 이 공연의 의미 자체가 없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검열관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공연의 목적을 위한 웃음을 새롭게 재창조해나가는 것이 바로 자신의 역할이고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라고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또는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알리거나 의미 있는 삶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각자의 역할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검열관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공연'을 포기해버리고 싶을 때도 있고 '웃음'이 없는 대본을 써서 타협해버리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작가처럼 꿋꿋이 자기의 역할을 다하고자 하지만, 진심을 알지 못한 채 비난의 말을 하는 주변 사람들로 인해 또 다른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지난 십수년간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 배우 김혜자씨는 자신의 역할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 현장에서 육체적 노동을 해서 그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이 고통받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이 현실을 알리는 것이 자신의 역할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고)
자신이 해야 할 올바른 역할을 알고 수많은 검열관을 만나더라도 본질을 벗어나지 않는 더 나은 역할을 해나가는, 작가와 같은 사람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박정숙(수성아트피아 공연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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