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논단] 지방의원 정당공천제 유감

입력 2010-04-12 09:19:03

6'2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대구시당 공천심사위원회에 외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당외위원이 3분의 1에 불과하여 역할 수행에 한계가 있으리라는 우려 속에서도 참여를 결정한 것은 지방자치제도 부활 이후 줄곧 쟁점이 되고 있는 정당공천제를 현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었다.

지난 3주간 단체장과 광역시의원 신청자에 대해서는 서류 심사와 심층 면접을 병행하여 실시하였다. 그러나 구의원의 경우 신청자가 많고 심사 기간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서류 심사만 하였다. 따라서 공천 여부 판단자료는 제출된 서류와 지역 국회의원의 설명이 전부다. 답답한 대목이다. 그러나 더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심사 과정에서 나온 비합리적 표현들이다. "외부 공심위원이 명심해야 할 것은 공천과 관련된 모든 것은 당협위원장인 지역 국회의원과 '협의'해야 한다는 중앙당의 새 지침이다" "예상 득표율은 10% 안팎이나 한나라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에는 문제가 없다" "시의원의 임무는 국회의원님 잘 모시고 당을 위해 봉사하며 정권 재창출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것이다" "정치하다 보면 젊은 혈기에 소소한 범죄 경력 한두 개 붙기는 보통이니 내 추천을 믿어주기 바란다". 단편적인 표현에 대한 견강부회한 해석이라고 할지는 모르나 이 발언들은 지방의원들에 대한 정당공천제가 지방정치의 중앙당 예속화, 지방선거의 대선과 총선 하부구조화, 지방의회의 집행부 견제 기능의 상실 등의 폐해 초래를 보여주기에 충분하였다.

특히 한 정당이 독주하고 있어 그 정당의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지역의 경우, 공천권자는 유능한 후보 발굴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고 출마자는 위로 국회의원만 바라보니 유권자들만 선거의 주변부로 내몰리고 있는 형국이 된다. 따라서 지방선거가 정당에 예속된 정치인이 아니라 지역의 발전과 주민의 복리 증진에 매진할 지역 봉사자를 선출하기 위해서는 후보 자격 요건의 강화 및 검증 시스템의 확립, 공정한 공천 심사 기준의 마련, 후보자의 인식 전환, 유권자의 정치민주의식 제고 등 기본적인 제도 개선을 넘어서 획기적인 정책 전환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집권당이나 국회의원보다 더 강력한 위세를 떨치고 있는 공산당과 당서기 주도의 중국 지방선거에서 발생한 후보자 공천 관련 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 선거관련법은 현'시'구향'진인민대표(군'시'구'읍'면 의원)와 촌민위원회 간부를 직선으로 선출하며 후보자는 공산당이 복수로 공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최초의 반란은 지린성 핑안촌에서 발생하였다. 주민들은 뽑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투표용지에 기입하는 방법으로 당 공천자를 낙선시켰다. 이 사건을 보고받은 베이징의 중앙당 수뇌부는 집권당의 임무는 민의를 받드는 것이라는 명분으로 백지투표용지 재선거를 허락하였다. 주민들은 "당서기만 바라보느라 눈이 이마에 달린 괴물 후보를 내쫓은 것으로 '바다에서 바늘 건지는 만큼 힘든 일(大海撈針)'이었다"고 술회하였다. 이 표현을 빌려 '바다 선거'(海選'seavote)로 명명하였으며 가장 널리 보급된 선거방식이다. 더 놀라운 선거 혁명은 쓰촨성 뿌윈향에서 일어났다. 임명직인 향장을 직접선거로 선출한 것이다. 한달반 동안 철통 보안을 지킨 향민들, 군중의 힘에 눌려 동조한 공산당원들, 4명의 경쟁자를 물리친 탄(譚) 향장 모두 대단하였다. 더 대단한 것은 처리에 고심하던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결정이다. 주민들의 용단이 중국 지방정치 발전의 이정표를 세웠다며 극찬하고는, 규정대로 현장(군수)이 임명장을 전달하라고 지시함으로써 현실과 제도를 접목시킨 것이다.

위와 유사한 선거 개혁 사례는 전국 곳곳에서 출현하는데 민의 후보가 당선된 경우 지역경제가 살아나고 정치갈등이 줄어드는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공산당은 각종 사례를 토대로 '공추공선제(公推公選制'주민추천 주민투표)'라는 선거제도를 마련, 보급하고 있다. 공산당'사회단체'유권자 10인 이상이 예비후보를 추천할 수 있고 서류심사'필기시험 및 공개면접을 거쳐 2명의 정식후보자로 압축하는 방식이다. 중국 공산당이 단독공천권을 포기하는 정책 대전환을 이룬 것이다.

이제 우리 정당들도 지방의원 정당 공천제에 대한 정책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 80% 지역이 기초단체장에 대한 정당 공천을 금지하고 있는 미국이나 무소속 당선비율이 급상승하고 있는 일본의 사례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조수성 계명대 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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