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박 2일 살사·탱고 파티 춤에 대한 무한 사랑뿐…
'팔공산 갓바위 인근 한 수련원에서 무박 2일의 살사·탱고 파티가 열린다.'
소식을 듣고 이달 3일에서 4일로 넘어가는 자정 무렵 팔공산 갓바위 인근 세종청소년수련원(경산시 와촌면 강학리)에 도착한 기자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깜짝 놀랐다. 전국에서 살사·탱고 춤을 즐기는 20~40대 청춘 남녀 300여명이 무아지경의 춤세계에 빠져들어 있었던 것.
대한민국 최대의 라틴댄스 동호회 '라틴 속으로'(http://cafe.daum.net/latindance) 10주년 기념 파티라 더 많은 인원이 모였다. 대구-서울-대전에서 매년 번갈아가며 열리는데 올해는 대구에서 열릴 차례라 대구 회원들이 주축이 돼 큰 파티를 열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마치 '젊은이들의 캬바레'나 '음탕한 춤꾼들의 해방구' 같아 보여 혹시 '젊은 제비'나 '흑심 품은 춤꾼'들이 판치는 곳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었는데 이는 기우였다. 유명 대학 전임강사를 비롯해 학교 교사, 컴퓨터 프로그래머, 연구소 연구원 등 대부분 번듯한 직업을 갖고 있을뿐더러 춤에 대한 무한사랑으로 뭉쳐 있었다. 어설프게 연애를 목적으로 들이댔다가는 여지없이 퇴출 수순을 밟게 된다.
이들의 무박 2일 파티는 서울과 대전에서 단체 관광버스와 삼삼오오 모여 타고온 승용차들이 도착한 오후 7시부터 뷔페를 겸한 식사와 함께 지역별 댄스팀의 기념공연을 관람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날이 바뀔 자정 무렵부터는 자연스레 프리 댄스 타임으로 넘어갔다. 2개의 방으로 나눠 한곳은 살사, 한곳은 탱고가 4일 오전 7시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아침 식사 후 모두 해산했다.
◆올해로 10년 된 전국 최대 라틴댄스 동호회
'라틴 속으로'는 줄여서 '라속'이라 부른다. 라속은 2만1천930명의 온라인 회원과 수천명의 오프라인 회원을 자랑하는 국내 최대 라틴댄스 동호회다. 올해 딱 10년째. 대구지역 집행부 회원들은 전체 회원을 위해 장소는 물론 음향장치, 먹을거리, 기타 소품 등을 완벽하게 준비했다. 이날 행사비용은 300만원 정도 들었는데 1인당 참가비 2만5천원을 받아 충당했다. 춤을 추다가 피곤한 사람들을 위해 지역별로 남녀 방을 각각 준비했다.
라속 회원들은 오프라인 모임에서 다들 '레제' '렝보' '기타루' '지고지순' 등의 닉네임을 사용했다. 물론 친해지면 통성명을 하고 나이와 직업 등도 알게 되지만, 잘 모를 때는 닉네임을 통해 편하게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간다. 이들은 닉네임만 대면 누가 탱고에서 고수급 춤을 추는지, 누가 살사춤의 대가인지 단번에 알아챈다.
대구지역 매니저(시숍)를 맡고 있는 이종호(33·일월전자 기술팀 대리)씨는 "올해로 8년째 라속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대구에서 이처럼 뜻깊은 10주년 기념파티를 하게 돼 기쁘다"며 "이번에는 장소 섭외가 잘 돼 전국에서 온 회원들이 모두 만족도가 높아 행사를 준비한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춤을 통한 진실한 사랑은 '결혼 아니면 퇴출'
라속에는 유달리 결혼까지 골인한 커플이 많다. 이날 대구 10주년 행사에도 청첩장이 3장이나 돌고 있었다. 춤을 통해 자신과 호흡이 맞고 평생 함께할 만한 배우자를 찾으면 라속 회원들의 축하 속에 결혼식을 올린다. 이날 참석한 여러 회원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일단 공식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서로의 외모와 춤, 겉으로 보이는 면 등을 파악한 뒤 뒤풀이 술자리나 티타임 등에서 호감을 표시해 본격적인 만남이 이뤄진다는 것.
그러나 춤을 추면서 딴 생각을 하거나 상대를 음흉하게 들여다보면 '누가 어떻다더라'는 얘기가 이내 돌아 퇴출되기 십상이었다. 일단 라틴춤을 사랑하지 않으면 버티기 쉽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다. 한가지 원칙도 있다. 여성 회원이 춤을 청하면 남성 회원은 거절할 권리가 없지만 남성이 청했을 때 여성은 거부권이 있다. 보통 하룻밤 새 한 남성이 10여차례 여성에게 청하면 한두번 정도 거절당한다고 한다.
라속을 통해 결혼에 골인한 해모수(42·대구시 달서구 죽전동)씨는 프리랜서 사진가로 2002년부터 라속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곳 활동을 통해 영이(31·입시학원 수학교사)씨를 만났고, 2004년 백년가약을 맺어 지금도 잘 살고 있다. 그는 "동호회 자체에 자정능력이 있기 때문에 춤을 통해 상대를 알아가면서 진실하게 사랑을 나눠야만 결혼에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회사원인 바보사랑(28·대구시 서구 비산동)씨는 "20대를 이대로 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친구와 함께 살사와 탱고 춤을 7년째 열심히 추고 있다"며 "이곳에서 좋은 이성을 만나면 그건 보너스"라고 했다.
◆전국 춤꾼들, 직업도 제각각
'대부분 백수나 건달이겠지'란 기자의 생각은 무지에서 비롯된 편견이었다. 자신의 직업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전문직 종사자들이 오히려 많았으며, 서로에 대한 배려와 에티켓이 몸에 밴 교양인들이었다. 무박 2일의 시간 동안 불상사는 단 한번도 없었으며, 각자 충분히 춤추고 즐긴 뒤 깔끔하게 헤어졌다.
대전시 동구 성남동에서 온 컴퓨터 프로그래머 쿨(Cool·40)씨는 "너무 일에만 빠져 지내다 보니 춤을 추는 이 모임이 유일한 즐거움"이라며 "이번 대구공연은 10주년이라 특별히 많은 사람이 모이고 준비도 잘 돼 오기 전부터 설렘을 느꼈다"고 말했다. 라속의 재능 있는 춤꾼 아톰&빙고, 핸슨(Hanson), 파스 루키 등은 춤 강사로 활동하기도 하지만 각자 전문적인 직업도 갖고 있다.
서울에서 온 태권도(31·서울시 마포구 합정동)씨와 지고지순(33·여·서울시 구로구 구로동)씨는 "서울에서 70명이 내려왔는데 다들 좋은 직업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회원들이 많다"며 "초기에 국내 유명대학 교수, 저명한 연구소 연구원, 학원가 유명강사, 방송사 영상파트 직원 등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기반을 잘 닦아놓은 덕분"이라고 말했다.
대구경북지역 라속 동호회원은 2천명 정도이며 오프라인 모임까지 활발하게 하는 이들은 200명 남짓이다. 이들은 대구시내 라틴바 '살시타' 등에서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며 춤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있다. 또 부정기적으로 서울·부산·대전 등 타 지역과 교류도 하고 있다.
글·사진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살사(Salsa)=정열적이고 다이내믹한 8박자 리듬이 특징. 1940년대 차랑고 등의 무도 반주음악 연주양식과 맘보, 볼레로, 차차차 등의 무도 리듬이 혼합돼 생겼다. 1950년대 미국-쿠바간 수교 단절로 쿠바의 음악가들이 푸에르토리코와 미국 뉴욕으로 대거 이주해 빅밴드의 스윙, 재즈 양식에 쿠바색이 섞인 라틴 재즈로 발달했다. 도미니카 사람이 설립한 음반사 파니아(Fania)가 살사를 상업적인 음악 장르로 정착시켜 살사라는 말을 널리 퍼뜨렸다.
※탱고(Tango)=기본적인 리듬은 4분의 2박자. 가끔 싱코페이션(당김음)이 붙고 리드미컬하게 연주된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다운타운에서 발생해 유럽으로 건너가 유행했다. 스페인의 민속음악 플라멩코에도 탱고라는 음악이 있으나 다른 탱고음악과 구별하기 위해 탱고 플라멩코로 부르고 있다. 이 음악은 옛 민요 솔레아에서 혹은 아라비아에서 발생한 것이라고도 하며 2박자의 리듬을 지닌 경쾌한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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