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봄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웨딩시즌이 시작되고 있다. 최근 혼수용품 장만의 트렌드는 '실속'과 '개성'으로 압축된다. 2000년대 이후에는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다른 사람 눈을 의식하기보다는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을 최소한으로 마련하는 예비부부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아끼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요즘 '똑'소리 나는 신세대들은 자기의 만족과 행복을 가장 염두에 둔 소비를 한다.
◆제대로 된 '명품' 하나로 만족
다음달 결혼을 앞두고 있는 직장인 강모(32)씨는 예비 시어머니께 받은 예물비용 500만원 중 300만원을 털어 샤넬 핸드백을 하나 장만할 생각이다. 대신 예물은 예비 남편과 합의해 커플링 하나만 마련키로 했다. 남편될 사람은 괜찮은 시계 하나 장만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강씨는 "결혼 예물 이것저것 장만해봤자 몇번 착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선배들의 조언을 참고했다"며 "차라리 이번 기회에 평소 부담이 돼서 사지 못했던 명품 하나 장만해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났겠다고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전반적인 경기위축에도 불구하고 예물시장에선 '명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오히려 확산되고 있다. 예물세트도 여러가지 유색 보석을 종류별로 마련하는 것보다는 최고급 다이아몬드를 장만하거나, 명품 시계·정장·핸드백 등을 구매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는 것.
교동귀금속번영회 곽상원 회장은 "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가운데서도 봄철 혼수시즌을 맞아 매출이 완만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며 "최근에는 순금보다는 18k 화이트 골드를 선호하는 추세이고, 유색보석에 비해 다이아몬드의 인기가 높다"고 밝혔다. 심플하고 전통적인 디자인에, 순수한 신부 이미지와 어울리는 다이아몬드가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는 것.
고급 손목시계세트도 인기다. 롯데백화점 귀금속 매장 관계자는 "1천만원대 전후의 유명 브랜드 시계의 혼수용 매출이 급상승하고 있다"며 "각 브랜드마다 수백만원에서부터 2천만원 가격대의 남녀 손목시계 세트 취급 비중을 늘리는 등 혼수 예물시장 잡기에 적극 나서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동아백화점 수입시계 매장 관계자는 "최근 2, 3년 사이에 혼수 시계 매출이 12~15% 정도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생활가전보다는 취미용품
평소 영화광인 김형인(34)씨와 장소현(31·여)씨 커플은 결혼을 앞두고 가장 많은 비용을 52인치 대형 TV와 홈시어터 시스템 구입에 쓰기로 했다. 김씨는 "둘 다 워낙 영화를 좋아해 집에서 좋은 음질과 화질을 즐길 수 있다면 여가시간을 즐기는 데 금상첨화일 것 같다"며 "다른 혼수와 예물은 줄이더라도 TV와 홈시어터에 투자하기로 합의했다"고 했다.
혼수 시장에서 가장 비용 지출이 많은 부분은 아무래도 가전제품. 하지만 최근에는 가전제품을 마련하는 데도 각자의 개성과 취미생활을 반영한 트렌드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평소 갖고 싶어도 적지 않은 비용 때문에 구매를 망설였던 고급 DSLR카메라나 오디오세트, 홈시어터 등이 젊은 예비 부부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것.
최근에는 가사일의 남녀 경계가 사라지면서 생활·주방 가전을 마련하는 데도 남성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전매장 관계자는 "예전에는 혼수를 장만할 때 부모님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예비 부부 둘만 매장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때 남성들이 '허리 굽히기 힘드니 세탁기는 인체맞춤형으로 설계된 것으로 달라' '집안 청소 시간을 줄이기 위해 로봇 청소기 하나는 장만해야 한다'는 등의 주문을 하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했다.
또 하나의 트렌드는 '캥거루 부부'의 증가로 효도상품이 혼수 목록에 오른 것이다. 워낙 부동산 값이 치솟으면서 신혼집을 구하는 대신 부모 집에 얹혀사는 신혼부부가 늘면서 안마의자와 돌침대 등의 상품도 혼수 특수를 맞고 있다.
◆새로운 여행지가 뜬다, 하와이, 유럽
전통적으로 신혼여행지로 인기를 끌어온 곳은 동남아 휴양지다. 푸껫, 발리 등이 신혼 부부의 단골 여행지로 손꼽혔다. 하지만 최근에는 '하와이'를 찾는 신혼부부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전자여권 도입과 미국과의 무비자협약 체결 등으로 방문이 한결 간편해졌기 때문. 아이에스투어 관계자는 "무비자로 인해 여행비용이 감소하면서 동남아와 비교해 비용에 큰 차이가 없는데다, 비행시간도 1시간 남짓 더 걸리는 정도여서 하와이를 찾는 신혼여행객들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행일정은 4박 6일이 대부분이다.
자유여행을 통해 유럽을 찾는 신혼부부들도 늘고 있다. 사는 동안 쉽게 찾을 수 있는 동남아보다는 평생 남을 추억 하나를 만들고 싶어하는 신혼부부들이 늘어났기 때문. 여행사 관계자는 "예전에는 자유여행을 가는 신혼부부들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최근에는 10쌍 중 2쌍 정도는 유럽 자유여행을 선호하는 추세"라며 "현지에서 사용하는 비용을 최소화한다면 다른 나라의 패키지상품과 비교해 비용 차이가 별로 없어 검소하게 유럽 여행을 다녀오는 신혼부부들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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