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고교 야구장의 감동과 눈물

입력 2010-04-02 10:57:35

우리나라 학교 스포츠는 대부분 관중이 없는 상태에서 경기인만의 잔치로 대회가 치러지고 있다. 고교 야구의 경우 한때 예외적이긴 하였으나, 그것도 1980년대 들어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경기장은 다시 썰렁하게 변해 버렸다. 학교 스포츠도 일반 학생의 동아리 수준이 아닌 학교 간 대항경기라면 관람 스포츠의 기능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학교 스포츠는 이점이 취약하다.

지난해 여름, 이와는 대조적인 일본의 고교야구 대회장을 찾을 기회가 있었다. 1915년부터 개최되어 91회를 맞은 고시엔(甲子園) 고교야구대회로서 대회의 규모와 성격, 진행 상황 등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선수들이 펼치는 경기 모습과 관중들의 열기를 접하고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40℃의 땡볕 아래에서 펼쳐지는 그들의 대장정은 그야말로 장관 그 자체였다.

2009년 일본의 고교 야구팀은 4천620개교로서 등록 선수가 16만 명에 이르고 있었다. 고시엔 야구대회는 그중 4천41개교가 수개월간의 예선을 거쳐 8월 초, 본선에 진출한 49개 팀이 2주간의 토너먼트를 펼쳤다. 규모 면에서 우리나라의 80배이다.

일본의 학교 스포츠와 고시엔 고교야구대회는 겉으로 드러난 거대한 규모와 화려함 외에 몇 가지 본질적인 특징이 있어 우리나라 학교 스포츠의 구조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첫째, 그들은 철저히 학업을 병행하면서 예선은 주말, 본선은 방학을 이용하여 대회를 치르고 있다. 우수한 선수라도 고교 학업 성적이 일정 수준을 통과해야만 대학 입학이 가능한 구조를 갖고 있다. 두 번째, 그들의 경기는 전 국민으로부터 지대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본선경기 하루 평균 관중이 7만 명으로 2주간의 관람 인원은 90만 명에 이른다. 대회 본선기간 중 국영방송 NHK의 전 경기 TV중계방송은 물론 각종 일간지들이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연일 대서특필하고 있다.

세 번째, 대회의 재원은 상업 스폰서나 광고판, 국가'지방자치단체 등의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의 입장 수입으로 충당하고 있다. 학교 스포츠, 나아가 아마추어 스포츠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고 대회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네 번째, 대회장인 고시엔 야구장은 1924년 효고현(兵庫縣)에 건설된 수용 인원 5만5천 명 규모의 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즈의 홈구장으로서 고시엔 고교대회의 본선경기가 진행되는 2주간을 무료로 임대해 주고 있다. 어웨이 경기의 누적에 의해 성적에 피해를 보면서까지 홈구장을 할애해 주는 한신 타이거즈의 대범함은 옥외구장으로서도 세계 최대 관중동원 능력의 숨은 저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고시엔 고교야구대회는 선수는 물론 응원단, 그리고 전 국민의 감동이 함께 젖어 있는 청소년 스포츠제전이라고 하는 점이 더욱 값어치를 크게 하고 있다. 경기에 최선을 다하나 승부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고 본선 진출 자체만으로도 영광으로 여기는 선수들, 아직은 미완성일 수밖에 없는 고교야구경기의 관람권 구입을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민들, 그리고 수 십대의 버스를 임대해 와서 모교를 응원하는 재학생과 동문들의 열광, 이는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고시엔 고교야구의 성립조건들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구조의 학교 스포츠가 정도의 차이일 뿐 대부분의 종목과 대회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학교 스포츠계에도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다. 청소년 대상의 학교 스포츠가 승리만을 위한 절규로써 그 의미를 찾을 수는 없지 않은가? 아직 갈 길이 멀긴 하나 지속적인 변화의 과정만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 경기 종료 후 경기장의 흙을 기념으로 담아가는 선수들의 모습, 양 팀 모두 승리한 팀의 교가를 부르고 들으면서 흘리는 감격의 눈물, 또 이러한 장면을 끝까지 전국에 TV중계하는 방송사의 배려는 스포츠가 감동을 생산해 내는 교육적 문화행위로 승화될 수 있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김동규 영남대 체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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