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다시 꽃피는 향일암

입력 2010-04-02 07:41:16

늦은 저녁, 남도(南道)의 향일암으로 가는 발길은 가벼웠다. 봄날, 아득한 민가(民家)의 불빛들은 새록새록 빛나고 들녘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은 싱그러웠다. 서울에서 꼬박 여섯 시간을 달려가 도착한 새벽, 여수 한려수도는 미명에 꿈틀거리고 있었다.

잠시 후 회원들은 일출을 보면서 저마다 탄성을 울렸다. 바쁜 현대인들이 남도의 끝자락에서 동백나무 우거진 숲길을 걸으면서 신선한 봄바람을 맡으며 한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품은 것 같은 붉은 아침 해를 바라보는 일은 마음 내어 오지 않고서는 결코 쉽지 않다. 경전(經典)을 펼쳐 놓은 듯한 바위하며, 미로(迷路)같은 바위 틈새를 지나 아스라이 놓인 해수관음상은 그야말로 한 폭의 풍경화처럼 아름답다. 참으로 '108산사순례'가 아니고서는 볼 수 없는 풍광(風光)이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서쪽 하늘에 찬란하게 일심광명(一心光明) 무지개가 또 뜬 것이다. 이를 보고 우리 회원들은 눈물을 흘렸다. 이 모든 것이 부처님께 향하는 간절한 서원이었다.

원효대사가 세웠다는 향일암은 전국 최고의 관음기도 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난 연말 뜻하지 않은 화마(火魔)로 인해 문화유산인 대웅전과 두 개의 전각을 잃고 말았다. 다시 대웅전을 복원 불사 하는데만 약 20억원이 소요되며 앞으로 완전 복원하는데 3년이나 걸린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소실된 문화재이다. 한 번 잃은 문화재의 복원은 사실상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그저 안타깝다.

우리 산사순례기도회가 향일암으로 달려가게 된 것은 대웅전의 복원 불사를 돕고 여수 세계박람회의 성공을 기원하는 법회를 가지기 위해서였다. 5천여명의 회원들이 모두 참석하기에는 도량이 좁은 관계로 인해 무려 1주일이나 걸렸지만 불자들이 공양미와 기와불사를 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피곤하기는커녕 나는 오히려 즐거웠다. 그들이 있기에 대웅전의 복원은 빨리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재는 지방 관청,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다. 국민 모두의 재산이다. 그동안 외국 침략으로 인한 문화재만 하더라도 무려 10만 여점이나 된다. 또 3년 전에는 국보 1호인 남대문을 방화로 잃었다. 일본은 심지어 명성왕후를 시해한 칼을 구시다 신사에 보관해 두고 있을 정도로 광분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들의 야만적 행위를 저지할 방법은 아무도 없다. 이렇듯 그들은 문화유산 가치의 잣대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그나마 요즘은 빼앗긴 문화유산을 되찾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자화자찬이 아니라 이런 시점에서 산사순례기도회의 향일암 대웅전 복원 기도법회가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종교를 떠나 우리 국민들이 문화재의 복원과 회수에 솔선수범해야 한다.

도선사 주지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