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감동에서 비롯된다. 감동은 믿음을 부르고 믿음은 불안한 마음을 달래 준다. 동서고금 존경을 받았던 종교 지도자의 삶은 신앙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감동적이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타나 중국 선의 황금시대를 연 육조 혜능의 일화는 충격과 감동이 함께한다. 혜능의 마지막을 지킨 제자 신회와의 첫 만남에서다. 신회를 방망이로 치면서 혜능이 말했다. '내가 널 때리면 너는 아프냐, 아프지 않으냐' 아픔과 아프지 않음을 함께 느낀다는 제자의 대답에 혜능은 다시 말했다. '나는 보면서도 보지 않는다. 본다고 함은 내 마음의 허물을 쉬지 않고 본다는 뜻이며 보지 않는다고 함은 다른 이들의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을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뜻 다가오지 않는 어려운 말이지만 '보느냐 보지 않느냐'는 같은 현상의 두 가지 측면을 말해 주려 한 듯하다.
'현 정권에 저렇게 비판적인 강남의 부자 절 주지를 그냥 놔둬서 되겠느냐'는 말로 시끄럽다. 급기야는 지난 대선 당시 대통령 당선을 위해 선거운동을 맹세했다는 엉뚱한 의혹까지 나왔다.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만든 조계종 내부의 문제가 자신에게로 불똥이 튀자 의혹의 당사자인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내부 싸움에 나를 끌어들이려 한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안 원내대표가 했다는 말은 우리 종교와 정치의 모습을 새겨보게 한다. 부자 절의 주지를 '좌파 운동권'이 맡아서 되느냐는 당 부당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말을 나오게 한 정치와 종교의 관계를 생각한다. 외압을 받았다거나 선거운동에 나섰다는 말은 종교가 자기의 울타리를 넘어 정치의 영역으로 들어와 있다는 말로도 들린다. 불교라고 현실과 무관할 수야 없지만 정치와 종교의 영역은 서로 다르다. 터전이 다르고 역할도 같지 않다. 가치를 추구하는 방법도 같지 않다.
정치가 최대 다수의 행복과 이익을 내걸고 있다면 종교는 소외받고 팽개쳐진 사람들의 억눌린 마음을 위로하는 역할을 맡는다. 사랑이나 자비는 모두 상대적 약자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정치가 챙기지 못한 역할을 종교가 대신해 주는 것이다. 종교가 정치와 행보를 나란히 한다면 권력으로 변한다. 역사는 특정 종교가 국교로 인정받던 시절의 권력지향적인 종교 부패를 기록하고 있다. 안 대표의 말은 종교가 자초한 면도 없지 않다. 선거 때나 행사가 있을 때면 우르르 몰려와 꽃 달고 앞자리에 앉아 있는 정치인의 모습을 볼 때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불교는 인과의 법칙을 가르친다.
우리 정치가 다름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엿보인다. 정부에 비판을 하고 동조하지 않는다고 우리 편이 아니라고 여기는 생각은 정치지도자의 말치고는 너무 속 좁은 말이 아닐 수 없다. 다른 역할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타협과 양보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운영할까. 안 대표는 보수를 기치로 내건 한나라당 국회 운영의 선두에 선 사람이다.
보수는 전통적 가치를 추구한다. 말 그대로 전통의 가치를 보호하고 지키려 한다. 대신 진보는 앞으로 나아간다. 당연히 고치려고 한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애매하고 어렵다. 어떤 사안에는 보수적 입장을 보인 사람이 어떤 사안을 두고는 진보적 생각을 말한다.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고 합리성을 이유로 다른 주장을 펴기도 한다. 국민의 행복과 이익을 추구하는 점에서 보수와 진보의 가치는 둘 다 소중한 것이다.
보수는 곧잘 수구라는 말과 어울린다. 그러다 보니 보수에는 불명예스런 꼬리표가 달리기도 한다. 그러나 보수는 전통의 가치를 지키고 이으려 노력하며 명예를 존중한다. 전통의 가치 추구는 결코 권력을 탐하거나 자신의 이익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다. 보수나 진보는 정치적 용어이기도 하지만 개인적 습관이나 삶의 방법과 환경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서로 경쟁에만 몰두하는 우리 정치 현실이 보수의 가치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보수는 나와 다른 남을 배척하는 게 아니다. 다르지만 이해하고 화합하는 마음과 행동이 보수의 가치다.
徐泳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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