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겋게 달아오른 황토가마
#이번에는 뭐할까. 매주 고민이다. 독자들에게 현장의 생생함을 전해준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기자와 함께' 코너. 너무 평범한 소재는 아이디어 회의에서 곧바로 퇴짜를 맞는다. 뭔가 색다르면서 조금은 위험하고 고생스러운 소재를 찾아야 한다. 정말 까다롭다. 체험 자체보다 소재 찾기가 더 힘들 지경이다. 이번 주에는 '참숯 만들기' 체험 제안이 가까스로 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첩첩산중이었다. 대구경북에서 숯 만드는 곳을 찾기가 힘든 것이다. 숯 공장은 대부분 강원도에 몰려 있다. 어렵사리 찾아낸 곳이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에 위치한 '가야백운참숯굴'이었다. 찜질방이지만 숯도 많이 만든다는 정보를 얻었다. "오려면 지금 와요. 오늘 불 빼니까." 주인장의 전화 속 목소리는 무뚝뚝했다. 부랴부랴 수첩을 챙기고 길을 나섰다. 22일 오후는 그렇게 정신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해인사IC에서 빠져나와 굽이굽이 산골짜기를 지났다. 평일이라 지나가는 차량은 거의 없다. 산과 숲에 둘러싸여 시간이 멈춘 듯 적막했다. 오직 내비게이션의 음성 안내만 귓가를 두드린다. 새삼 느꼈지만 내비게이션의 힘은 상당하다. 골짜기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이곳을 쉽게 찾은 건 오로지 내비게이션 덕분이다.
김상수(65) 대표가 기자를 만나자 가장 먼저 데리고 간 곳은 건물 옆 공터였다. 높이가 7m는 족히 되는 참나무 더미 앞으로 갔다. "이 참나무들은 경북 의성이나 김천 등 도내 각지에서 배송되죠. 한 곳에서 계속 벌목이 안 되니까 여기저기 돌아가면서 벌목을 해서 갖고 오는 것이죠. 참나무에 새싹이 나면 벌목이 금지되기 때문에 보통 4월 말까지 나무 실은 트럭이 옵니다. 1년에 600~700t의 참나무를 받는데 계속 공터에 쌓아놓고 수시로 참숯을 만드는 거죠. 주로 겨울철에 숯을 집중적으로 만들어요." 김 대표는 이 참나무들이 t당 8만5천원이나 하는 비싼 거라는 자랑도 빼놓지 않았다.
참숯 만들기의 첫걸음은 산더미같이 쌓인 참나무 하나하나를 보기 좋게 토막내는 일이다. 전기톱으로 자르는 이 과정은 매우 위험하다고 했다. 잘못하면 큰일난다며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만류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자와 함께' 코너의 정신은 '무조건 해 본다'가 아닌가. 결국 전기톱을 잡고 참나무를 자르기 시작했다. '윙' 하는 굉음이 귀를 먹먹하게 한다. 전기톱을 처음 잡아본 터라 겁이 살짝 났다. 수많은 톱밥이 튀면서 묵직한 하중이 양손으로 전해진다. 팔에 힘이 풀렸다간 톱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 내내 긴장감에 인상이 굳어졌다. 하지만 사람 몸통만 한 나무가 쑥 잘려나가자 가슴이 탁 뚫리는 느낌이다.
"나무를 자르는 것도 기본기가 절대적이죠. 나무가 한창 잘릴 때는 톱이 S자형으로 휩니다. 자르는 단면이 비뚤비뚤해지기 쉽죠. 그렇게 되면 숯가마에 나무를 차곡차곡 쌓아놓을 수 없습니다. 처음에 잘못 배워놓으면 10년이 지나도 나무를 비뚤비뚤하게 자르죠." 나무 자르는 것 하나도 그만큼 노하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제는 본격적인 참숯 만들기다. 이곳에는 6개의 황토가마가 있다. 매주 1개의 가마에서만 숯을 만들고 나머지는 찜질방 등으로 운영한다. '고열'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가마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열기가 머릿속을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처음엔 머리카락이 '다닥다닥' 탈 정도라고 한다.
이번 체험은 행운이 따랐다. 이곳에서는 매주 토요일 가마에서 불을 빼고 벌겋게 달구어진 나무를 꺼낸다. 하지만 요 며칠 궂은 날씨 때문에 굴에서 나무를 꺼내는 시간을 늦췄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기사 마감에 맞춰 월요일에 체험할 수 있었다.
숯이 만들어지고 있는 가마 앞으로 갔다. 근처만 갔는데도 내부 열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반쯤 열린 입구 안으로 벌건 세상이 펼쳐졌다. 나무가 벌겋게 불타며 이글거리는 모습이 태양을 연상시켰다. 내부 온도는 어림잡아 1천300℃는 된다고 한다. 얼굴이 뜨거워지는지도 모른 채 오묘한 그 세계에 잠시 빠져들었다. 일꾼들이 이미 상당수를 꺼내고 일부만 남았다. 작업복을 갖춰 입고 5m짜리 기다란 숯 장대를 들었다. 옆에서 지켜보는 김 대표와 일꾼들은 불안한 기색이었다. 숯 장대를 가마 내부로 쑥 밀어 벌겋게 타고 있는 나뭇더미를 끄집어냈다. 불꽃이 여기저기 튀고, 화끈거리던 얼굴이 열기에 어느새 따가워졌다. 몇 차례 왔다갔다한 장대 앞 부분은 이미 벌겋게 달궈졌다.
이제 집게로 장작을 집어 모래가 있는 구역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벌겋게 탄 장작나무에 재가 섞인 모래를 덮어 2, 3일 식히면 비로소 백탄이 탄생한다. 굵은 장작은 주로 관상용으로 사용되며 가격이 1㎏에 7천원으로 꽤 비싸다. 실내 공기 정화나 가습 등에 사용된다. 잘게 부서진 장작은 드럼통에 넣고 뚜껑을 닫은 뒤 식히는 데 대부분 고깃집 숯불구이용으로 팔린다.
김 대표가 쓴소리를 했다. "아마 대구에 있는 고깃집의 80% 이상은 중국산 검탄을 사용할 겁니다. 검탄은 유해가스를 배출하지 않은 채 식힌 거라 저급품이지만 백탄에 비해 많이 채취할 수 있어 가격이 저렴하죠. 예를 들어 우리 공장의 경우 보통 한 가마에 참나무가 12t이 들어가는데 백탄은 겨우 600~700㎏ 정도만 만들 수 있는 반면 검탄은 3, 4t을 뺄 수 있거든요. 하지만 검탄을 오래 태우면 가스가 나와 머리가 아프죠."
100% 백탄만 만든다는 김 대표는 가마 뒤쪽으로 뿌연 연기를 가리켰다. 가스가 빠지고 있는 것. 가마 뒤쪽으로 돌아가자 다소 신기한 장면이 보였다. 굴뚝 역할을 하는 관 사이로 정체 모를 액체가 주르르 떨어지고 있었다. 액체는 바로 목초액. 참나무를 태우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생겨난다고 한다. 이 목초액은 커다란 수통에 모은 뒤 보통 3, 4년 숙성시켜 판매한다. 무좀이나 피부염, 숙취제거, 피로회복 등 다방면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참숯 만드는 과정을 끝낸 뒤 둘러본 가마 뒤쪽의 풍경은 천하절경이었다. 백운동계곡의 한 줄기가 시원스레 내리면서 주변의 산세와 절묘한 그림을 만들어냈다. 휴가철이면 근처 계곡이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한다. 도심 속 찌든 시름이 가마 속 열기와 수려한 풍경 사이로 재가 돼 사라졌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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