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중국 뤼순의 감옥에서 최후를 맞았다. 조선과 동양의 평화를 깨뜨린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처단하고 일제의 불법적이고 부당한 사형 언도에 따라 순국한 것이다.
그로부터 10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오늘 안 의사의 100주기를 맞았다. 대한독립과 동양평화라는 일념 하나로 먼 이국 땅에서 의로운 일을 마치고 육신의 허물을 벗어버린 안중근. 떠난 지 벌써 한 세기가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유해도 찾지 못한 부끄러운 후손
'내가 죽거든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으로 이장해 달라.' 안 의사는 이 같은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유해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의 유해를 찾기 위한 작업은 해방 직후부터 계속됐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결실을 맺지 못하고 허묘(墟墓)가 대신하고 있다. 마땅히 그를 기억하고 길이 추모해야 할 후손 된 입장에서 심히 부끄러운 일이다.
다행히 올해 100주기를 맞아 정부가 유해 찾기에 적극 나서겠다고 했다. 먼저 중국'일본에 안 의사 유해 발굴과 고국 봉환에 적극 협조해 줄 것을 공식 요청했다. 일본 정부에 안 의사 매장 관련 자료를 요구했고 중국에는 현장 정밀 조사에 대한 협조를 구해 놓고 있다. 일본과 중국이 제대로 협조할지, 앞으로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아니 영원히 그의 유해를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의 가능성만 있더라도 최선을 다해 유해를 찾고 고국으로 모셔오기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안 의사에게는 영원한 안식의 길로 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그가 남긴 유산 새기고 계승할 때
그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동시대 사람들과 후손들에게 전하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물음에 자신있게 답할 사람이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100년 전 안중근 의사가 주창했던 평화의 사상을 우리는 이제까지 깊이 있게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의 정신을 아는 것이 그의 헌신과 희생에 보답하는 길임에도 우리는 그러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그의 명징한 정신, 그가 남긴 소중한 유산을 계승하고 널리 알려 실천하는 것은 후손 된 입장에서 마땅한 도리다.
최근 들어 한'중'일 등 여러 학자들이 안 의사의 평화 사상을 새로운 시각에서 깊이 있게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이런 연구가 쌓이고 그의 사상의 요체가 널리 알려진다면 아시아 나아가 전 세계가 더 이상 비극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지난 100년의 아픔을 딛고 새로운 100년을 열어가기 위해서라도 그의 가르침을 소중히 되새기고 후세에 전해야 한다. 역사가 우리에게 던져준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하고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없다.
오늘 100주기를 맞아 비록 그의 제단에 직접 향을 사르지 못하더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그가 남긴 평화의 정신을 깊이 마음속에 새겨본다면 안중근 의사도 흡족해할 것이다. 이는 100년 전 하얼빈과 뤼순에서 험난한 역사의 파고에 혈혈단신으로 마주했던 안중근 의사의 유일한 바람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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