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무르 제국의 사라진 영화 그 쓸쓸한 흔적들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머나먼 사마르칸드'에서처럼 지루한 여행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올리비에의 주옥 같은 글귀는 나를 머나먼 우즈베키스탄의 한 도시로 빠져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서 사마르칸드까지 가는 도로는 끊임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양쪽으로 하고 지루하도록 길게 일직선으로 펼쳐져 있다.
도로는 왕복 4차로인데 중앙 분리대는 큰 가로수가 대신한다. 타슈켄트에서 렌트한 승용차의 운전수 세르게이는 도로 상태가 좋지 않은데도 거의 시속 100㎞ 가깝게 속도를 올렸다. 가끔 어눌한 영어도 구사하는 큰 덩치의 러시아계인 그는 이 도로에서 종종 대형사고가 발생한다고 하면서도 속도를 줄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가끔 급브레이크에 놀라서 창밖을 보면 큼지막하게 파인 웅덩이가 도로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다.
군데군데 검문소가 있는데, 경찰들은 아무 이유도 없이 차를 세우고 저만치에 가만히 서 있었다. 세르게이는 한참 투덜거리다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금방 안색을 바꾸면서 경찰에게 다가가서 아는 체를 하고는 약간의 돈을 쥐어 줬다. 내가 세르게이에게 잘못한 게 있느냐고 묻자, 잘못한 것은 없지만 일단 차를 세우면 으레 돈을 집어 주어야 한다고 했다. '당신은 승용차를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부자이니 내게 돈을 줄 여유가 있지 않느냐'라는 식으로 공공연히 뒷돈을 요구하는 것이다. 요구를 거절할 경우 이유 없이 계속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면서 세르게이는 한 시간 가까이 분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인구 약 50만명의 사마르칸드는 과거 실크로드의 중심으로 칭기즈칸에 의해 패망할 때까지 그 성세를 이어왔다고 한다. 2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고대도시에는 알렉산더 대왕, 칭기즈칸, 티무르 제국의 유적이 있어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먼저 찾은 곳은 티무르왕과 친척들이 잠들어 있는 구르 에미르 사원. 구르는 무덤, 에미르는 지배자를 뜻한다. 이곳은 티무르가 오트라르 원정에서 죽은 자신의 손자 무하마드 슐타를 위해 만든 무덤인데 1404년에 지어져 이듬해 중국 명나라를 원정하러 가던 도중에 병으로 사망한 티무르도 여기에 같이 묻히게 되었다. 여기에 자신의 스승과 아들이 함께 묻혔으니 가족묘라 할 수 있다.
무덤 내부는 5㎏의 화려한 금가루로 금빛 문양이 입혀 있고, 천장은 금색과 청색의 이슬람 문양으로 채색돼 있다. 티무르를 비롯해 여러 개의 관이 있지만 모두 비어 있다. 실제 관은 지하 4m 아래에 보관돼 있으며 관광객들에게는 개방하지 않는다고 한다. 무덤 사원을 다 둘러볼 즈음에 현지에 근무하는 관리원으로부터 제의를 받았다, 약간의 돈을 주면 지하에 보관된 실제 관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그리 큰 금액이 아니라 선뜻 응하고 따라가니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는 공포영화에 나올 만큼 음침한 돌계단이었다. 내려가서 한쪽으로 방향을 꺾으니 돌로 만든 실제 티무르왕의 관이 있었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카메라를 꺼내자 현지 관리인이 카메라 플래시는 절대 쓰지 말라고 당부했다. 어렵사리 촬영한 사진은 명암이 맞지 않아 잘 나오지는 않았지만 이후 내가 아끼는 사진 중 하나가 됐다.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찾은 식당에서 케밥(비빔밥과 비슷한 터키의 전통 요리)과 샤슬릭(꼬치구이)을 주문하고 도수가 약한 보드카도 한병 시켰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 주문한 음식이 나왔는데 샤슬릭에 비계만 잔뜩 있는 고기가 유난히 많았다. '외국인이라고 재고를 처리하며 바가지를 씌우나' 하는 생각에 주인에게 따졌다가 실상을 알고 난 뒤 너무 미안해 꾸역꾸역 비계덩어리를 먹느라 혼이 났다. 내용인 즉 이곳에서는 고기 중 가장 고급 부위가 바로 비계인데, 이곳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이고 좋아하며 특히 자기가 식당을 개업한 이후로 한국 사람이 처음이라 특별 서비스를 베풀었다는 것이다. 호의는 고마웠지만 먹는 일은 참으로 고통이었다.
마침 그 식당에서 결혼식이 있어 유난히 사람들이 북적였지만 전통 결혼식 현장을 가까이서 보는 행운에 비하면 불편은 참을 만했다. 이곳에서는 보통 결혼식 때 식당을 빌려서 며칠에 걸쳐 친지나 지인들을 불러 먹고 마시고 같이 지낸다고 한다. 그런데 이날은 두 쌍이 합동결혼식을 하는 모양이었다. 두 쌍의 신혼부부가 나란히 앉아 있는 테이블로 바짝 다가가서 셔터를 누르니, 낯선 이방인의 갑작스런 등장에 신혼부부도 나처럼 긴장해 눈만 동그랗게 뜨고 빤히 쳐다봤다.
점심식사 후에 찾은 곳은 레기스탄 광장이었다. 사마르칸드의 가장 중심이자 티무르 제국의 번영을 나타내는 곳으로 항상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역사의 보고이다. 레기스탄 광장에서는 과거 왕에 대한 알현식과 공공집회가 열렸다. 현재도 매년 대통령이 참석하는 '빛과 소리의 제전'을 여는데, 이때 티무르 제국의 사라진 영화를 볼 수 있다고 현지인들은 말했다.
레기스탄 광장은 정면에서 봤을 때 왼쪽에 '울르그벡 메드레세', 오른쪽에 '시르도르 메드레세', 중앙에 '티라카리 메드레세'라는 건물이 ㄷ자를 이루고 있다. 3개의 메드레세는 중세 이슬람의 신학과 여러 가지 학문을 연구하는 기관이다.
전해져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시르도르 메드레세는 입구의 아치에 동물(사자)의 모양이 그려져 있는데, 이를 만든 건축가는 우상 숭배를 금하는 이슬람교 교리를 어겼다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이후 자살했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칸칸으로 된 방들 대부분이 기념품을 파는 상점으로 사용되고 있어 문화재 보호의 빈틈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타슈켄트로 다시 돌아가는 길은 약 400㎞. 사마르칸드를 출발해 도심을 벗어날 무렵 세르게이는 기름을 넣어야 한다며 도로를 벗어나 조그만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잠시 덜컹거리며 가다가 허름한 가정집 앞에 차를 세우더니 세르게이가 내려 대문을 두드렸다. 대문이 반쯤 열리고 빠꼼히 얼굴을 내민 젊은 남자는 세르게이를 보자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초면은 아닌 눈치였다.
잠시 후 그가 기름을 말통에 담아와 차에 넣는데 이유를 물어보니, 주유소보다 여기서 구입하는 게 더 싸다고 했다. 우리나라처럼 불법으로 파는 신나가 아닌지 불안했다. 세계 어디든 규제가 있으면 구멍이 있고,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 구멍을 찾아내는 것 같다.
돌아가는 길은 다소 지루했지만 옛날 동서 무역의 거상들이 낙타를 몰고 다니던 길이라고 생각하며 명상에 잠기니 그들의 숨결과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리는 듯했다.
황병수(영남대병원 방사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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