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답답한 마음 달래주는 것은

입력 2010-03-24 10:46:53

최근 막을 내린 문화방송의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충격적 결말이 화제다. 마지막 회에서 지훈(최다니엘 분)과 세경(신세경 분)이 교통사고로 죽는 것을 암시하며 끝나는데 이 '황당한 결말'에 대한 시청자들의 항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가난한 주인공이 고생 끝에 행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는 점에서 항의 차원을 넘어 배신감과 분노까지 표출되고 있다. '이 드라마를 너무 사랑했는데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절망을 안겨줬다. 뒤통수를 맞은 기분' '지붕 뚫고 하이킥이 아니라 저승 뚫고 하이킥이다' '생각할수록 기분 나쁜 결말이다. 그동안 열심히 봤는데 솔직히 배신감이 든다'는 등 상처(?)받은 감정을 여과 없이 쏟아내고 있다. 연출자의 기획 의도를 이해한다는 반응도 있지만 개연성이 적은 '반전을 위한 반전'이었다며 강도 높은 거부감이 압도적이다. 인기 드라마 종영 후 흔히 나타나는 아쉬운 반응과는 차원이 다른, 드물게 부정적인 반응이다. 이 정도면 제작진이 당황하지 않겠나 싶다.

'지붕 뚫고 하이킥'은 다양한 소시민적 등장인물들이 웃음을 선사하면서 권위 잃은 가장, 학벌주의, 88만 원 청년 세대 등 이 시대의 모습을 사회문화적으로 담아내 많은 시청자들로부터 공감과 인기를 얻었다. 이 시트콤의 프로듀서는 비슷한 제목의 전작 '거침없이 하이킥' 등 여러 시트콤 작품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함의를 성공적으로 버무리는 독특한 연출로 주목받아 왔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도 역시 그의 명성에 어긋나지 않게 예상을 뛰어넘는 결말을 선사했는데 문제는 그것이 과도하게 우울했다는 점이다.

우리의 삶은 때때로 상승하기도 하지만 무료한 일상이나 힘든 현실을 버틴다는 느낌으로 지낼 때가 많다. 요즘같이 경제적으로 힘들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사랑'을 강조한 고(故) 김수환 추기경을 그리워하고 '무소유'를 이야기한 법정 스님의 입적을 슬퍼하면서 그의 저서를 갑자기 갈구하는 것은 이 시대가 사랑이 메마르고 지나치게 소유를 숭배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럴 때 우리는 TV 드라마나 영화 등을 통해 힘든 일상을 잊거나 그 속에서 희망을 찾는다. 스포츠 스타들의 빛나는 성취에 환호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지나치면 독이 되는 것을 알지만 게임이나 오락거리에 몰두하는 것도 답답한 괴로움을 잠시나마 덜기 위함이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시청자들이 그처럼 '분노'하는 것은 답답한 현실 속에서 드라마 속 지훈과 세경의 해피 엔딩으로 행복감을 느끼고 싶었으나 그 같은 기대감이 무참히 배반당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치사회적 현실은 이처럼 현실도피적 충동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밝지 못하다. 경기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일부 대기업은 성과급 잔치를 했다고 하는데 이를 체감하지 못하는 많은 국민들은 소득 양극화가 고착된다는 어두운 전조가 아닌지 의심한다. 아이 낳기를 꺼리며, 낳은 아이는 어릴 때부터 극심한 경쟁에 내몰리고, 앞선 어느 세대보다 자기 투자를 많이 한 젊은이들이 '88만 원 세대'의 슬픈 닉네임을 단 채 희망의 출구를 찾지 못하는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붓는 4대강 개발 사업이 밝은 미래를 약속한다지만 환경 재앙이 될 것이라는 끊임없는 경고를 흘러 넘기기 힘들다. 돌이키기 힘들 수도 있는 결과를 두고 제대로 소통하지 않은 채 거침없이 밀어붙이는 자신감(?)은 과감한 추진력인가? 아니면 무모한 독선인가? 종교 탄압 논란 속에 말을 아끼는 여당 원내대표가 사회 문제의 원인을 '좌파 교육' 운운했다니 '정치 지도자'의 단견과 신중하지 못한 발언 수준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답답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은 언제나 존재한다. 비아냥과 불신 속에서도 정치 발전에 대한 열망이 뜨거우며 다양하고 창의적인 문화가 발전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의 성과로 얻은 과실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누는 기부 문화가 커 나가고 있고 각 분야의 인재들은 세계에서 빛나고 있다. 이름 없는 현자들이 밝은 내일을 기약하며 고달픈 오늘을 묵묵히 견뎌내고 있다.

다만, 지금은 조금, 혹은 많이 답답하다. '압력' '표적 수사' 등의 단어가 심심찮게 나오면서 희미한 옛 시절의 그림자가 대기를 답답하게 만들고 있다. 거침없는 말과 행동이 난무하지만 '거침없이 지붕 뚫고 하이킥'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김지석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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