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홈쇼핑 고객따라 황금시간 따로 있어요"

입력 2010-03-23 09:52:32

퇴근 후 혹은 주말이면 TV리모컨을 누르는 것이 유일한 낙이자 취미인 노처녀 '질러'양. 60여개 되는 케이블 방송 채널을 돌리고 또 돌리다 보면 결국 멈추게 되는 것이 바로 홈쇼핑 채널이다. 당연히 '지름신'을 영접하는 것은 의례행사가 돼 버렸고, 카드청구서에는 지난달치 할부에다 이달치 할부가 눈덩이처럼 쌓이고 있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는 질러양. 오늘도 열심히 홈쇼핑 채널을 돌리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내가 좋아하는 액세서리와 명품은 왜 원하는 시간에 나오지 않느냐는 말이지. 화장품도 떨어졌는데 꼭 필요할 땐 보이질 않고." 질러양, 아무 생각없이 채널만 돌리다 보니 그 오랜 세월을 홈쇼핑에 빠져 살고도 편성의 법칙 하나를 간파하지 못했다. 홈쇼핑도 장사 막 하는 것은 아니다. 나름 전략과 전술이 있는데 말이다. 그녀를 위해 TV홈쇼핑만의 재미있는 편성전략을 들여다봤다.

◆연령별 타깃을 명확히 하라

홈쇼핑의 기본 원칙은 지상파 TV의 편성 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홈쇼핑 역시 기본적으로 TV라는 매체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 원칙은 '오전에는 장년층, 오후에는 젊은층'.

GS홈쇼핑에 따르면 오전 시간에는 40대 이상 고객 비중이 45%에 달한다고 한다. 전체 고객 중 40대 이상의 비중이 30%에 못 미치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비율이다. 따라서 홍삼음료, 안마의자, 옥돌매트 등 건강상품이 주로 편성된다.

낮시간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주부들을 겨냥하는 데도 편성 전략이 있다. 오전 10시~낮 12시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젊은 주부들이 왕성한 미씨존을 형성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화장품, 생활용품, 침구류가 주로 편성된다. 어린이 도서와 학습용품 등도 자주 등장하는 상품이다.

오후 1시 이후에는 주부 중에서도 타깃 연령층이 30대 이상 주부로 이동한다. 어린 자녀를 둔 주부들은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오후 시간에는 다시 바빠져 TV에 눈돌릴 여유가 없는 반면 30대 중반 이후 주부들은 본격적으로 느긋하게 쇼핑 대열에 들어서는 것.

◆지름신을 공략하는 고도의 심리전

명품 방송 시간대를 잘 살펴보면 점심시간 이후 오후시간, 혹은 새벽 시간대가 주를 이룬다. 그 가장 큰 이유는 구매결정에 충분한 시간을 주기 위한 것. GS홈쇼핑 관계자는 "명품의 경우 금액이 큰 만큼 쉽게 결정을 내리기가 힘들다"며 "이 때문에 고가의 제품일수록 다소 여유 있는 시간대를 골라 소비자들에게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명품'이라고 해도 100만원대를 넘어서는 제품들은 쉽게 취급하지 못한다. 아무래도 경제적 부담이 크다 보면 구매로 연결되는 비중이 줄어들다 보니 30만~50만원대 제품이 대부분이라고. '무이자 할부'는 필수다. 상품값을 5만~10만원 선으로 나눠 매달 결제할 수 있다 보니 가격에 대한 저항감을 크게 줄여준다. '반품이나 환불 100% 보장합니다'라는 멘트 역시 소비 심리를 자극한다. 반품이나 환불을 보장한다는 것은 그만큼 상품의 질에 확신이 있다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공중파 인기 드라마에 따라 편성이 달라지기도 한다. 현대홈쇼핑은 3월 2일, 오후 10시 40분부터 영단어 학습기를 편성해 대박을 터뜨렸다. 보통 교육 관련 상품은 오전시간에 주로 편성되지만 당시 인기드라마 '공부의 신'의 영향으로 드라마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편성한 것이 주효한 것. 현대홈쇼핑 관계자는 "공중파의 인기 드라마가 언제 끝나느냐에 따라 홈쇼핑 방송 시작 시간이 달라진다"며 "소위 '재핑(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는) 타임'을 잡기 위해 그 시간에 상품의 핵심 설명이 이뤄지도록 시간을 조절한다"고 밝혔다.

◆최근 고정편성 경향 뚜렷

홈쇼핑 방송 프로그램은 지상파 방송과 달리 가변적인 편성을 해왔지만 최근 고정 편성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충동구매를 방지하고 목적 시청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GS샵은 '기분 좋은 아침' '특종! 투나잇' '프라임 타임 쇼' 등 고정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트렌드 리더들이 출연하는 본격 버라이어티 쇼핑 방송을 통해 발빠른 쇼핑 정보를 전하는 것.

현대홈쇼핑에서는 2002년 11월부터 계속되고 있는 최장수 프로그램 '클럽 노블레스'라는 명품 전문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다. 현대홈쇼핑 관계자는 "초기만 해도 브랜드 이미지를 고려해 홈쇼핑 판매를 주저하는 명품 업체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신뢰가 쌓였다"며 "소비자들 역시 백화점 명품관에서 느끼는 '사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이 없는데다 취소나 반품이 손쉬운 홈쇼핑 명품 판매를 선호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말 마케팅을 강화하는 것도 새로운 추세다. 주말과 휴일의 시청률은 평일 대비 50% 이상, 매출은 20% 이상 높기 때문. GS샵은 주말에 가전, 패션 등 특정상품군을 테마로 하는 24시간 '카테고리 킬링 특집' 방송을 월 2회 이상 하고 있다. 또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주말이나 월말 구매가 훨씬 저렴하거나 사은품이 많다고 한다. 한 홈쇼핑 관계자는 "주말에는 사은품 증정이나 추가 구성 등의 혜택이 많아진다"며 "특히 월말에는 실적을 채워야 하는 압박감에 훨씬 많은 혜택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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