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 치료를 꼭 받아야 할 아이들

입력 2010-03-23 07:19:39

베토벤, 슈만, 슈베르트, 보들레르, 플로베르, 모파상, 고흐, 니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더불어 모두 매독환자였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공통점도 있다. 한때 매독은 말라리아 다음으로 흔한 질병이었다. 묘한 것은 말라리아에 걸린 사람은 적극적인 치료를 받았던데 반해 매독에 걸린 환자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이제는 치료가 불가능할 때까지 치료를 받지 않으려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말라리아와 매독의 전염경로가 다르고, 이에 따른 죄책감이나 부끄러움이 치료를 늦추거나, 치료가 불가능한 지경으로 몰고 갔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매독'처럼 숨기고 싶은 질병, 치료를 늦추려는 경향이 있는 질병이 있다면 무엇일까? 몇 가지가 있겠지만 일반인에게 '정신과 진료'가 비슷한 느낌을 주지 않을까 싶다. 사람의 뇌 역시 신체의 한 부분이고, 팔다리나 오장육부의 고장처럼 얼마든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웬만해서는 정신문제에 관한 한 치료를 받지 않으려 한다. 정신에 관한 문제라면 애써 숨기고 외면하려는 경향도 있는 듯하다. 특별한 통증이 없으니 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을 것이다.

새 학기가 시작됐다. 준비물을 챙겨오지 않는 아이, 수업시간에 늘 딴 생각을 하는 아이, 늘 말썽을 일으키는 아이들이 있다. 아이의 그런 증상이 설명이나 꾸지람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치료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경우는 많지 않다.

물론 아이들은 자라면서 말썽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상당히 심각해 보이는 문제에 대해서도 '성장과정의 일부'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물론 성장기의 많은 문제는 성인이 되면서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하더라도, 그 일시적인 현상을 안고 지낸 세월이 낳은 결과는 평생 흉터처럼 남기 마련이다. 자라면서 없어질 상처라도 치료받아야 할 것과 치료받지 않아도 될 것을 구분해야 하는 것이다.

기자에게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있는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곧잘 이야기한다. 어떤 친구가 어땠고, 어떤 장난을 쳤으며, 어떤 짓을 해서 혼났다는 둥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편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보니 새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에 대한 품평도 늘어놓는다. 얼굴도 모르는 아이들이지만 대체로 아이답고, 귀엽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대로 둬서 될 문제가 아닌데…'라는 느낌을 주는 아이들이 있다. 확인해 보니 몇 학년을 거치는 동안 선생님들도 그 아이의 문제점을 알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 아이는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는 것 같았다.

현재 우리 교육시스템이나 관습상 부모가 아닌 선생님이 아동에게 이른바 '정신과 진료'를 권하기는 무척 난감하다. '학교교육'을 통해 바로잡을 수 있는 문제와 전문가의 치료가 필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학령기 아동에 관한 문제라면 거의 전적으로 학교에 떠넘기려 한다. 학생이 학교와 학창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데도 다만 '농땡이'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가려 하는 것이다.

학교와 가정은 물론이고 교육청도 함께 나서 머리를 맞대고 적절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전문가들의 순회 방문상담도 방법일 것이다. 아이는 치료받을 권리가 있고, 어른은 치료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앞세대가 책임을 회피하면, 뒷세대가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요즘 우리는 그런 현상을 자주 목격한다.

조두진/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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