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 작은 노력 모여 뇌졸중 환자에 큰 희망 주죠"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장기'로 불리는 뇌(腦). 수십 년간 학자들은 뇌의 신비를 밝히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런 이유 중 하나가 재활치료, 즉 잃어버린 뇌 기능을 되찾아주자는 것이다. 뇌는 신비한 존재다. 특정 영역이 기능을 잃으면 다른 영역에서 대신해 준다. 뇌출혈, 교통사고 등으로 뇌의 운동신경이 손상돼 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사람도 재활치료를 거치면 다른 뇌 영역에서 팔과 다리 운동신경을 떠맡아 걷고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이런 사실도 199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 이른바 '회복기전'이다. 회복기전을 찾아내는 것, 즉 손상된 뇌의 기능을 대체할 영역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재활치료를 위한 기나긴 싸움의 첫 걸음을 뗀 셈이다.
◆재활치료의 야전사령관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장성호(47) 교수는 '야전 사령관'이다. 재활치료라는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언제 어떤 공격을 쏟아부어야 효과적인지 철저한 분석을 한다. 레지던트, 인턴, 연구원, 재활치료사 등 20여명의 인력을 총동원해 최대 효율의 전투를 치러낸다. "생명 자체를 다루지는 않지만 운명은 바꿀 수 있습니다. 그의 모토는 '최선의 성과'(Best Outcome). "대충 치료해도 환자는 모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작은 노력들이 환자와 환자 가족의 운명을 바꿉니다. 걷지 못하는 환자를 걷게 하고, 주먹조차 쥐지 못하는 환자의 손 기능을 회복시켜준다면 인생이 많이 달라지겠죠." 재활치료는 첨단 전투다. 첨단 뇌영상 촬영장비를 통해 손상 부위를 찾고 어떤 회복기전이 가능한 지를 밝혀낸다. 장 교수는 2007년과 2009년 두 차례나 '올해의 재활의학 학술상'을 받았다. 뇌졸중 환자의 손상된 운동신경 회복기전을 찾아낸 공로를 인정받아서다. 기존 뇌졸중 환자의 운동신경 회복기전은 4가지가 알려져 있었다. 장 교수는 세계 최초로 2가지 회복기전을 더 발견해 세계 학계에 보고했고, 현재 1가지 회복 기전을 추가 발견해 국제학술지 심사를 받고 있다. "재활치료에는 다양한 첨단 무기가 동원됩니다. 전기 및 자기자극, 첨단 치료의약이 적절한 시기에 정확한 위치를 찾아 떨어져야 하고,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고 재활치료사들이 성심성의껏 환자를 도와야 합니다. 때문에 팀원들 사이에 호흡이 가장 중요합니다."
◆재활치료는 시간과의 싸움
그에게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는 어색하지 않다. 가상현실을 이용한 뇌졸중 환자 치료법을 처음 개발해 2005년 6월 뇌졸중 관련 세계 저명 학술지인 '스트로크'(Stroke)에 실렸고, ABC, NBC 등 방송사를 통해 미국 전역에 소개되기도 했다. 뇌손상 환자의 심각한 발목 경직을 없애려면 과거엔 신경 절제수술을 받아야 했다. 장 교수는 간단하게 주사로 없애는 방법을 최초로 개발,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뇌손상 환자들에게 시술되고 있다. 꾸준한 연구를 통해 세계 최초로 발견하거나 증명한 것이 무려 30여 가지. 현재 포스텍과 함께 로봇을 이용한 재활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해 준비 작업이 한창이다. 지난 10여년간 저명 국제학술지에 실린 장 교수 논문만 109편. 최근 들어 SCI급 논문을 매년 20여편씩 발표한다. 통계치로 보면, 국내 의과대 교수들은 평균 3, 4년에 한 편의 SCI급 논문을 낸다.
"재활치료는 시기가 가장 중요합니다. 발병 후 4주내에 70%가량 회복되고, 3개월이면 일정 수준의 자연치유가 끝납니다. 자연치유가 왕성한 시기에 적절한 재활치료가 더해진다면 평생 휠체어 신세를 져야할 사람도 혼자서 걸을 수 있게 됩니다." 그는 환자를 접하면서 안타까울 때가 많다. 다른 병원에서 몇달간 재활치료를 받다가 뒤늦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온 환자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가족들조차 거의 포기한 상태의 환자들을 걷게 만든 사례는 한 해 수십여명에 이른다.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그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밖에서는 '마약을 쓰는게 아니냐'며 농담처럼 한다는데, 정말 그런 마법 약이 있으면 쓰고 싶다"고 했다. 재활치료는 그저 부가적인 의료행위가 아니며, 생명은 아닐지언정 운명을 다루는 첨단 분야라는 그의 말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몇 해 전 그는 줄기세포를 이용한 뇌졸중 치료 연구에 매달린 적도 있었다. 장 교수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대목이다. 한국에서 처음 시도된 연구였고, 기대 이상의 성과도 거뒀다. 줄기세포를 주사한 환자의 운동신경이 일정 부분 되살아날 수 있음을 입증한 것. 영남대병원과 대구시를 줄기세포를 이용한 뇌졸중 치료의 세계적인 메카로 만들어보려했지만 무산되고 말았다. 그는 "대구의 한계를 절감했다"며 짧지만 긴 여운을 남겼다.
◆어려울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의사
당초 그는 예방의학을 전공하려 했다. 한두명을 치료하는 것보다 질병 자체를 정책적으로 막아보고 싶었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그에게 부모님은 "청진기 없는 의사가 무슨 의사냐?"며 반대했고, 부모님을 설득할 시간을 벌기 위해 무의촌 공중보건의로 가게 됐다. "시골에는 집안에 방치된 환자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인구 4천여명인 마을에 그런 환자가 30명을 헤아렸고, 대부분 뇌졸중 환자였습니다. 보건소 수입이 연간 4천만~5천만원쯤 됐는데, 이 돈으로 재활치료를 돕고 싶었죠. 그런데 당시만 해도 지역에 재활의학과가 없는 겁니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재활의학과에 레지던트로 간 이유다. 1998년부터 영남대병원으로 자리를 옮겨 첨단 재활의학에 매달렸다. "재벌가 딸이 깡촌에 시집 온 기분이랄까요?" 그만큼 당시만 해도 지역은 재활의학 불모지였다. 동물 실험부터 시작해서 연구기반 만드는 작업에 매달렸다. 스트레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 2005년 그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척수에 다발성경화증이 생긴 것. 아직 원인도 밝혀지지 않은 병인데다 재발이 반복되면 손발 마비뿐 아니라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가족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더군요. 심리적 압박감도 엄청났습니다." 다행히 그에게는 한번 재발로 그쳤고, 지금은 회복 상태다. 물론 손발이 저리고 심한 운동도 할 수 없지만. 대기 환자가 워낙 많이 밀린 탓에 3주밖에 입원시킬 수 없다는 점이 가장 안타깝다는 장 교수. 이틀간의 취재를 마치고 돌아서며 그에게 어떤 의사가 되고싶은지 물었다. "어려울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의사, 그게 가장 좋겠군요." 시간을 다투는 재활의학과 의사다운 답이다.
글·사진=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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