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함께] 불법 주정차 단속

입력 2010-03-20 07:28:30

"번호판 가리기 꼼짝 마…얌체 행동 소용 없어요"

불법주정차 차량이 발견되면 먼저 경고장을 발부한다.
불법주정차 차량이 발견되면 먼저 경고장을 발부한다.
증거 확보를 위해 사진도 찍어야 한다.
증거 확보를 위해 사진도 찍어야 한다.
이동식 CCTV 단속은 두명이 한다.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키보드로 CCTV를 조종한다.
이동식 CCTV 단속은 두명이 한다.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키보드로 CCTV를 조종한다.
중구에는 고정식 CCTV가 12대 설치돼 있다. 단속요원들은 상황실에서 모니터를 보며 불법주정차를 단속한다.
중구에는 고정식 CCTV가 12대 설치돼 있다. 단속요원들은 상황실에서 모니터를 보며 불법주정차를 단속한다.

'국토는 좁고 자동차는 많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어느 곳을 가나 자동차가 넘쳐난다. 주차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당연지사. 도심에서 불법으로 도로를 점유한 차량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날마다 숨바꼭질 같은 불법주정차 단속이 되풀이되는 이유다.

잠시 볼일을 보기 위해 도로변에 차를 세운 사이 스티커를 발부받은 경험은 운전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다. "앞 차는 안 끊겼는데 왜 내 차만 끊느냐" "재수 더럽게 없는 날이다". 이렇게 토로하거나 단속요원과 언성을 높이고 나서야 불편한 심기가 조금 풀린다. 졸지에 4만~5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하는 운전자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다. 하지만 단속요원으로서는 공익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 운전자가 아니라 단속요원 입장이 돼 보면 불법주정차를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대구에서 차량 통행이 가장 많은 중구의 불법주정차 단속 현장 속으로 들어가 봤다. 요즘 불법주정차 단속에는 사람이 눈으로 확인한 뒤 스티커를 발부하는 방법과 CCTV(고정·이동식)를 이용하는 방법이 함께 사용된다.

◆고정식 CCTV 단속

대구 중구청 교통과를 먼저 방문했다. 상황실에 들어서자 벽면 가득한 CCTV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계성중·고교~동산네거리, 통신골목~대구백화점, 동성5길~삼덕소방파출소 등 6곳에 설치된 12개의 CCTV가 도로 상황을 실시간 중계하고 있었다. CCTV와 연결된 컴퓨터를 통해 CCTV를 이리저리 조작하는 직원들의 손길도 분주했다.

보통 주정차 금지구역에서 5분 이상 머물면 단속 대상이 되지만 중구청은 고정식 CCTV 단속에 6분의 시간을 준다. CCTV에 불법주정차 차량이 포착되면 1차 사진을 찍고 6분 후에도 차량이 이동하지 않으면 재차 사진을 찍어 단속한다. 1차 사진이 찍히면 컴퓨터 모니터 하단에 차량번호와 함께 시간, 장소 등이 나타난다. 6분이 되면 단속이 확정돼 빨간색으로 표시된다.

설명을 간단히 들은 뒤 한 자리를 꿰차고 CCTV 조종에 도전했다. CCTV는 컴퓨터 마우스로 움직인다. 마우스 하나로 줌(zoom)뿐 아니라 회전도 시킬 수 있다. 컴퓨터 모니터에 통신골목을 잡은 CCTV 화면을 띄운 뒤 마우스로 단축 다이얼을 누르자 CCTV가 빙글빙글 돌아가며 구석구석을 비췄다. 마침 인도와 차도에 걸쳐 불법주차한 차량이 잡혔다. 줌 기능이 있는 왼쪽 버튼을 클릭하자 차량 번호판이 바로 앞에서 보는 것처럼 다가왔다. 그런데 차량 번호판이 가려져 있었다. 단속을 피하기 위한 번호판 가리기는 날로 교묘해지고 있다고 한다. 수첩, 종이, 쇼핑백 등 온갖 물건이 다 동원된다는 것.

번호판을 가려 놓은 차량은 특별관리 대상이다. 사진을 찍는 대신 동영상으로 녹화를 한다. 차가 출발할 때 노출되는 번호판을 포착하기 위해서다. 녹화를 한 뒤 이번에는 대구역네거리를 잡은 CCTV 화면을 띄웠다. 불법주차 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1차 사진을 찍은 뒤 동산네거리, 삼덕소방파출소, 대구백화점 CCTV 화면을 차례로 보며 도로 상황을 체크했다. 6분이 되자 모니터 하단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대구역네거리에서 1차 사진이 찍힌 차량이다. 증거 확보를 위해 다시 사진을 찍었다. 단속이 확정되는 순간이다.

◆이동식 CCTV 단속

CCTV가 부착된 차를 타고 다니며 단속한다. 중구청에는 6대의 단속 차량이 있다. 일반 차량을 개조한 것으로 개조 비용은 대당 3천만원 정도다. 차에는 두명이 탑승한다. 조수석에 탄 사람이 컴퓨터 키보드로 CCTV를 조종한다. 방향만 맞춰 주면 CCTV가 자동으로 차량 번호를 인식해 사진을 찍는다. 이동식 CCTV 단속은 순환식으로 이뤄진다. 한 구역을 정해 한바퀴 돌면서 1차로 위반 차량의 사진을 찍은 뒤 다시 돌면서 5분 이상 불법주정차한 차량을 단속하는 방식이다.

고정식 CCTV 단속 체험을 한 뒤 차를 타고 중구청을 나와 동아백화점 인근 전자골목으로 향했다. 짐을 내리거나 물건을 사기 위해 불법으로 주차한 차량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단속에 앞서 방송부터 했다. '16△△, 31○○, 98□□ 차량 이동해 주세요.' 급히 사람들이 나와 차를 뺀다. 미처 이동하지 못한 차는 CCTV에 고스란히 사진이 찍혔다. 전자골목 끝에 이르자 차 두 대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앞차의 번호판이 뒷차에 가려 사진 찍기가 힘든 상황. 먼저 뒷차의 뒷번호판을 찍은 뒤 앞으로 가 CCTV를 180도 회전시켜 앞차의 앞번호판을 찍었다. 차들이 여러 대 붙어 있어도 육안으로 번호판을 구별할 정도의 틈만 있으면 번호판 촬영이 가능하다고 한다.

통신골목으로 갔다. 곳곳에 불법주정차 차량이 눈에 띄었다. 대구백화점과 삼덕소방파출소를 거쳐 다시 통신골목으로 진입했지만 1차 적발된 차들은 보이지 않았다. 단속 차량을 보고 차를 이동시켰기 때문이다. '참 얌체다'는 생각을 하며 대구백화점을 지나 2·28기념중앙공원 근처에 이르자 모니터 하단에 단속 확인 표시가 들어왔다. 10여분 전 사진이 찍힌 차량이었다.

◆수기(手記) 단속

중앙로가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지정되면서 차량 통행이 부쩍 늘어난 종로로 향했다. 도로 양쪽에 승용차와 승합차가 한 대씩 불법주차돼 있었다. 경고장을 와이퍼 사이에 끼우고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중구청 단속요원과 함께 종로골목을 한바퀴 돈 뒤 10여분 후 다시 돌아왔다. 두 대의 차가 그대로 있었다. 과태료 부과 통지서를 붙이려는 순간 승용차 운전자가 뛰어왔다. 운전자는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한 뒤 황급히 차를 타고 사라졌다. 하지만 승합차 운전자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과태료 부과 통지서를 끼운 뒤 증거 확보를 위해 다시 사진을 찍었다.

CCTV가 도입되면서 수기단속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2006년 CCTV 단속을 시작한 중구청의 경우 전체 단속 건수 가운데 수기단속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게다가 수기단속도 점점 기계화하고 있다. PDA로 단속정보를 입력하고 사진을 찍는 방식이다. 중구청도 올해 PDA를 도입할 계획이다.

◆단속요원들의 고충

불법주정차 단속 체험을 나간다는 말을 들은 한 후배 기자가 "선배, 제대로 체험하려면 멱살잡이라도 벌여야 합니다"고 말했다. 공연한 소란이 걱정스럽긴 했지만 단속요원의 애환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면 실랑이도 나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체험을 하는 동안 마찰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민의식이 높아진데다 CCTV 단속이 늘어나면서 현장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는 일도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불법주정차 단속업무는 1990년 경찰에서 시·군·구로 이관됐다. 초창기 단속요원들은 멱살 잡히는 것은 기본이고 맞는 경우도 많아 파출소 가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지금은 그런 일이 거의 발생하지 않지만 화를 삭이지 못해 욕을 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한 단속요원은 "처음에는 봐달라고 하다가 여의치 않으면 돌변하는 사람들이 있다. 시민들이 욕한다고 맞받아칠 수는 없기 때문에 한쪽 귀로 흘리고 퇴근 후 소주 한잔으로 기분을 달랜다"고 말했다.

CCTV 단속이 도입된 후로는 항의 전화가 많이 늘었다. CCTV 단속은 우편으로 단속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에 2, 3일 정도 시차가 발생하는 탓이다. "왜 내 차만 단속했느냐" "5분도 안 됐다"며 언성을 높이거나 발뺌하는 시민들을 진정시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기자가 중구청 교통과를 방문했을 때 직원 3명이 연신 울려대는 전화통을 붙잡고 씨름하고 있었다. 한 직원은 "하루 일과를 마칠 때면 입이 바짝 말라 있고 기운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오후 한나절 짧은 체험을 마치면서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잠깐은 괜찮겠지'라는 생각에 불법주정차를 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도 됐다. '내가 조금 불편하면 다른 사람들이 편해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실천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알고 있나요?=불법주정차 단속에는 경고장을 발부한 뒤 5분 이상 기다려 주는 5분 예고제가 실시되고 있다. 하지만 5분 예고제 없이 바로 단속이 될 뿐만 아니라 견인까지 되는 지역이 있다. 인도, 교차로, 도로모퉁이 5m 이내, 횡단보도 10m 이내, 보행자 전용도로 등에 주정차한 경우다. 과태료를 선납하면 20% 감면해주는 제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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