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뿔난 청송군민들

입력 2010-03-20 07:37:27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이란 문구가 있다. '살아서는 진천이요, 죽어서는 용인'이란 의미라고 한다. 살기는 충북 진천이 좋고 죽어서는 경기도 용인이 좋다는 뜻으로 통한다고 한다. 오랫동안 구전돼 온 이 말 때문에 두 지역의 희비가 엇갈리는 듯하다. 진천 쪽은 살기 좋은 곳으로 홍보하기에 더 없이 좋은 문구일 것이고, 반대로 용인 쪽은 난감할 것이기 때문이다. 세간에 떠도는 이야기조차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 오늘날 민선 지자체들의 입장이다.

경북에는 23개 시'군이 있다. 저마다 독특하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지역을 홍보, 관광객 유치에 나서는 등 '세일즈 행정'을 펼치고 있다. 경북에서도 특히 벽지로 통했던 청송(靑松) 역시 예외는 아니다. 청송은 한때 '육지의 섬'으로 통할 만큼 교통이 불편했다. 10여 년 전 이 지역 국회의원은 맨발로 비포장길을 걷는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청송은 영화로도 알려졌다. 1990년 이두용 감독의 청송교도소가 배경인 '청송 가는 길'과 김기덕 감독의 청송 주산지 배경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년)이 그것이다. 청송은 경북에서 청정 지역으로 통한다. 그런데 이곳에 1980년대 전두환 전 대통령 때 삼청교육대를 위한 특수 목적 시설이 만들어진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때문에 억울하게도 범죄자 수용 시설이 있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덮어쓰게 됐지만 청송은 자랑거리가 많다. 주왕산과 청송사과는 널리 알려진 명소이자 특산품. 이미 오래전부터 유명세를 타고 있다. 세종대왕의 비인 소헌왕후를 배출한 청송 심씨(沈氏)와 퇴계 이황 집안의 진성 이씨(李氏)가 본관을 쓰는 곳이고, 작은 군 지역으로는 드물게도 조선조 450년 동안 도호부가 위치했던 유서 깊은 곳이다.

특히 청송사과의 명품화를 위해 경북도청 사과 전문 간부 공무원을 부군수로 모셔와 청송사과의 해외수출에도 나서고 있다. '오지'라는 불리한 자연환경을 '청정'이라는 자원으로 활용해 이미지 바꾸기에 남다른 애를 쏟고 있는 중이다. '청정 청송'의 군의회와 군민들이 17일 이귀남 법무장관의 사형집행 시설 설치와 보호감호 제도 재도입 추진 발언에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히는 등 단단히 뿔났다. 인구 2만8천의 작은 군이지만 누구 못잖은 고향 사랑과 자부심을 가진 군민들의 분노를 정부는 직시해야 할 것이다.

정인열 중부지역본부장 oxe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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