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나무의 추억 '학교 노거수'들이 사라진다

입력 2010-03-16 10:27:45

우레탄트랙·도로편입·관리부실…수십년 전 나무 자취 감춰

대구 동구 반야월초교 졸업생인 박모(38·대구시 수성구 사월동)씨는 최근 가족들과 함께 모교를 찾았다가 가슴이 아팠다. 학교 다닐 당시 운동장에 있던 아름드리 양버즘나무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씨는 이 나무에서 친구들과 함께 매미를 잡고 말뚝박기 놀이를 했었다. 박씨는 "학교 측에 물어보니 운동장에 인조잔디를 깔고 트랙을 만드는데 나무가 방해돼 잘라냈다고 했다"며 "어린 시절 친구처럼 지냈던 나무가 없어지면서 어릴 적 추억도 함께 사라져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대구경북 초·중·고교에 있는 추억어린 수령 70~80년이 넘은 노거수(老巨樹)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관계기사 3면

운동장이 도로로 편입되거나 운동장에 트랙을 만드는 등의 개발 과정에서 교정을 지키던 나무들이 잘려나가고 관리부실에 따른 고사로 노거수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학교 역사가 오래된 학교일수록 노거수가 많아야 하지만 노거수에 대한 총체적 관리 부실로 학교 교정이 삭막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졸업생에겐 추억을, 재학생에겐 정서를 함양할 기회를 빼앗고 있다.

학교 노거수가 무차별적으로 자취를 감추는 것은 도로 개설과 관리 부실 등이 가장 큰 원인이다. 대구지역 교육계에 따르면 대구지역 학교에 있는 노거수는 60~70그루로 추정된다. 이는 10년 전에 비해 절반 이상 줄어든 수치라는 것이다. 학교 노거수의 수령과 수종은 고사하고 몇 그루가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나마 남아있는 노거수마저 관리가 부실해 상당수가 고사하고 있다.

경북지역 학교 노거수는 대구보다 덜 훼손됐지만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가창초교 우록분교의 히말라야시더는 가지를 잘못 치는 바람에 고사하는 등 상당수 학교가 교목 관리를 잘못하는 바람에 노거수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에 따라 얼마 전까진 역사가 오래된 학교에는 학교마다 노거수가 적게는 한 그루, 많게는 10여 그루에 이르렀지만 지금은 역사가 오래된 학교에서도 노거수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대구경북지역 유명한 학교 노거수는 대구 종로초교의 회화나무와 성서초교의 양버즘나무, 계성고의 가중나무·느릅나무, 신명고의 상수리나무, 현풍초교의 향나무, 영천 임고초교의 양버즘나무 등이다. 이 중 종로초교의 회화나무는 해방 전 이 학교에 다녔던 일본인 졸업생들도 나무를 보기 위해 찾아오고 있으며, 임고초교의 양버즘나무는 뉴질랜드가 자랑하는 국립수목원의 양버즘나무에 비해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 등 학교 노거수는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구시교육청 심후섭 교육과정정책과장은 "대구경북지역 학교의 귀중한 재산인 노거수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며 "지역 학교와 교육청, 대구시·경북도가 노거수 관리를 체계화해 더 이상 나무가 사라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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