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입력 2010-03-12 08:17:55

지금 세계는 천재지변으로 전쟁 중인 것 같다. 아이티, 칠레, 터키의 지진이 그렇고 남극에는 빙하(氷河)가 녹아 육지가 섬이 되는 등 세계 지도를 바꾸어 놓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춘삼월인데도 산간지방에는 때아닌 폭설이 내렸다.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옷은 화사해지고 웃음꽃이 피어야 하는데 마음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즉, 봄은 왔는데 봄이 온 것 같지가 않다.

한나라 원제 때 왕소군이 입궁을 했다. 원제는 화공 모연수가 그린 화첩에서 후궁을 골랐는데, 화공 모연수는 얼굴을 잘 그려 달라는 여인들로부터 뇌물을 받았다. 하지만 미모에 자신이 있었던 왕소군만 뇌물을 주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모연수는 괘씸하게 여겨 그림의 뺨에 검은 점 하나를 그려 넣었다. 어느 날 흉노족의 선우 호한야(呼韓邪)는 후궁들과 결혼을 원해 원제는 화첩에서 못난 후궁들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호한야는 뜻밖에 왕소군을 원했다. 원제는 실제로 왕소군을 보자 '어떻게 저런 미인을 몰랐을까?'하고 의아해 했다. 원제가 이상히 여겨 조사한 결과 뇌물이 오간 사실을 알고 모연수를 참수했다. 혼인을 하고 흉노 땅으로 간 왕소군은 35세에 세상을 떠났는데 후대 당나라 시인 동방규는 왕소군의 심정을 대변하는 시를 지었다.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봄이 와도 진정 봄을 느낄 수 없는 왕소군의 서글픈 심정을 묘사한 이 시에서 유래한 말이 '춘래불사춘'이다.

봄은 생동(生動)의 계절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봄은 우리들 곁에서 자꾸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떤 까닭일까? 유례없는 지구촌 재앙(災殃)으로 인해 마음이 그지없이 우울하다. 그러나 우리 산사 순례기도회는 지난 2월 포대화상님을 놓고 성금을 모금, 아이티에 보내는 등 정성을 기울였다. 이 지구촌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기 때문이다.

산승(山僧)이 이끌고 있는 '108산사 순례기도회'는 올봄에 북한의 신계사 순례를 다녀오려고 했다. 수천 명의 우리 불자들이 108대의 버스를 타고 육로(陸路)로 금강산을 순례한다는 것은 실로 역사적인 사건일 수 있다. 그러나 경색된 남북관계로 순연되고 있어 아쉬움이 크다.

우리 불자들은 역사적으로 뛰어난 북한의 사찰들을 순례하기를 진실로 간절하게 서원(誓願)하고 있다. 어서 남북한 민간 외교가 화해의 물결을 타고 춘래불사춘이 아닌, 진정한 봄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도선사 주지 선묵혜자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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