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본적 주소는 '○○면 ○○리 ○○마을 ○○번지'라고 쓴다. 지금처럼 행정구역이 광역화되고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편입돼 사는 세상에 아직도 면, 리까지 쓰는 곳이 있냐며 누군가 놀라워했던 기억이 난다.
'예천군 지보면'. 지도를 보니 대구에서도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경북 내륙 중의 내륙이다. 며칠 전 손목 수술을 받은 권○○씨의 주소다. 몇 년 전부터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손목 사용이 어둔하고 아파하는 듯해서 부모님과 여동생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이곳 대구까지 데리고 온 환자이다. 진단 결과 손목뼈 중 하나가 무혈성 괴사라는 병이 생겨 모두 망가진 상태였다.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도 뼈 이식을 고려해 보겠지만 너무 심하게 손상이 진행돼 괴사된 뼈를 제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였다. 더욱이 30대지만 정신지체 장애를 앓고 있었기에 그 시기를 놓친 듯해 아쉬움은 더했다.
수술 방법과 수술 날짜를 상의하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부모님은 세번이나 병원을 방문하셨다. 예정된 수술 전날 필자는 바쁜 외래 일정을 소화하다 입원환자 명단을 보니 ○○씨가 벌써 입원 명단에 올라와 있었다. 외래 마치고 올라가 얼굴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미안하게도 깜박 잊고 퇴근해버렸다.
다음날 회진하러 병동에 올라가 순박하게만 보이는 어머니와 여동생, ○○씨를 보는 순간 아차 싶었다.
"미안합니다. 어제 입원하셨죠? 제가 와 본다는 게 깜박했네요. 정말 미안합니다."
"와 보실 줄 알았는데…. 얘가 많이 불안해 잠을 못잤습니다. 수술 잘해 주세요."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고 있어 아쉽다'라고 말하던 내가 정작 성하지도 않은 다 큰 자식을 먼 시골에서 도시까지 수술 받으러 오신 분들께 세상의 각박함을 느끼게 해 드린 듯해 몸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네, 수술 잘 해드리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위안을 드렸지만 시골에 계신 내 부모님을 소홀히 대한 것 같아 못내 속이 편치 않았다.
수술이란 큰일에 대한 불안함에 주치의의 따뜻한 마중을 기다렸을 텐데…. 그 옛날 주말, 시골집에 갈 때면 따뜻하게 마중 나오시던 내 부모님처럼.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다. ○○씨를 치료하면서 스스로를 반성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보다 더 겸손한 자세로 작은 부분까지도 놓치지 않는 의사가 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듯 싶다.053)550-5000
이영근 trueyklee@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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