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산책] 과자 파는 남자와 두부 파는 여자

입력 2010-03-10 07:29:19

한마디 말 속에도 살아온 모습이 깃들어 있다. 삶을 가까이서 통찰할 수 있는 곳 중에 하나가 시장이다. 아파트 주변으로 목요일마다 난전이 서는데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면 옛날 오일장이 생각나 정겹다. 이곳에서는 덧거리라는 미덕의 매개체 때문에 무감각했던 마음이 찌릿하게 되살아난다. 특히 장의 마지막 좌판을 지날 때 들리는 두 음성은 매번 나를 웃게 만들면서 말 한마디가 주는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과자 파는 남자가 '먹고 가이소'라고 곡조를 담아 외치면 두부 파는 여자는 꼬리를 잡듯 '사 가이소'라는 말로 장단을 맞춘다. 빼빼 마른 체격에 딱딱한 과자를 파는 남자와 물렁한 두부를 파는 뚱뚱한 여자는 마주보고 있다. 그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보기와는 다르게 남자는 감상적이고 여자는 논리적이다. 남자는 먹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여자는 사 줘서 감사하다고 한다.

남자는 갖가지 과자를 늘어놓고 무조건 먹고 가라고 한다. 혹시 그가 상술을 부리나 싶어 유심히 살펴보지만 과자를 먹는 동안 그는 절대 손님을 보지 않는다. 돌아서서 과자를 구우면서 '실컷 먹고 가이소'만 외칠 뿐이다. 하교 시간이 되면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과자를 집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도 남자는 오직 실컷 먹고 가라고만 한다. 나는 그의 장사가 염려되어 필요 이상의 과자를 사는 경우도 많았다.

여자도 두부를 주사위 크기로 잘라서 시식용으로 내놓는다. 여자는 빤히 쳐다보고 있다가 두부가 목구멍에 넘어가기도 전에 맛있냐고 친절히 묻는다. 여자는 손님이 이쑤시개를 놓기 바쁘게 비닐봉지에 두부를 담는다. 나는 시식한 것이 미안해서 여러 번 두부를 산 적이 있다.

남자나 여자나 음식으로 손님을 부르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남자의 가게 앞에는 늘 사람이 와글거리는 반면 여자의 가게 앞은 한산할 때가 많다. 사람들은 별것 아닌 말 한마디에서도 공유하는 감정이 비슷한 모양이다. 남자를 보면서 먹고 가는 사람이 너무 많아 걱정이고, 여자를 보면서 먹고 가는 사람이 너무 없어 염려가 된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내 생각에 꿀밤을 놓으며 빙그레 웃는 얼굴로 두 가게 사이를 지난다.

남자와 여자는 난전 장사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남자의 퍼주기식이나 여자의 쳐다보기 장사가 논리적인 내 계산으로는 도저히 수지 타산이 맞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는 모두 잘 살고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은 수만 가진데 오지랖 넓은 나는 내 앞가림도 못하면서 괜히 남을 걱정했다. 사람들의 말 속에는 그 사람만의 살아가는 특별한 방법이 들어 있음을 몰랐다. 길지 않은 한마디 말 속에 그 사람의 삶이 들어있음을.

주인석 수필가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