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경관 무력증, 세계 첫 복강경 봉축술 성공
프런티어(Frontier)는 미국 서부시대 개척지를 뜻하는 동시에 특정 지식 및 활동 영역의 한계를 뜻합니다.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길이자 남들이 가지 않는 길입니다. 많은 의사들이 오늘도 묵묵히 의료현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누군가 가야할 길이기에 외롭고 힘들지만 앞서 나간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번 주부터 시작하는 '메디컬 프런티어'(Medical Frontier)는 지역에서 활약하는 개척자 의사들의 이야기를 다루고자 합니다. 의료도시 대구를 선도할 이들의 고군분투기를 담았습니다. 많은 성원 바랍니다.
메디컬 프런티어 (1)-계명대 동산의료원 산부인과 조치흠 교수
'수술실의 마에스트로!' 그는 수술의 처음과 끝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어느 부위를 어떻게 다뤄야 할 지 손끝으로 느끼고 있었다. 당초 약속(?)했던 30분은 정확히 지켜졌다. 배에 미세한 구멍을 뚫어 그 곳을 통해 자궁근종을 완벽히 제거한 뒤 상처부위를 마무리하기까지 걸린 시간. 복강경이 비춰주는 뱃속 화면은 그에게 악보였고, 손에 쥔 수술도구는 지휘봉에 다름없었다. 예상보다 큰 근종. 제거하기 쉽지 않았지만 거침 없었다. 10분도 쉬지 못한 채 그는 바로 옆 수술실로 향했다. 미혼인 20대 환자는 난소기형종 수술을 기다리고 있었다. 난자가 종양이 되면 배아줄기세포의 테라토마처럼 조직이 분화를 시작하고 털, 손톱, 치아 같은 조직으로 변형한다. 정확한 위치를 잡아 복강경을 집어넣은 뒤 기형종을 제거하는 수술이 시작됐다. 그 작은 구멍을 통해 비닐주머니를 집어넣은 뒤 기형종을 조금씩 떼어내 주머니에 담고, 그것을 다시 빼내야 한다. 기형부위를 잘라내고 일일이 봉합하는 과정은 보기처럼 쉽지 않다. 하지만 그는 수술 부위를 마치 밖으로 꺼내놓은 듯 능숙하게 마무리지었다. 오늘 하루 잡힌 수술 스케줄만 10여건. 잠시의 쉴 틈도 허락하지 않는다.
◆세계 최고를 꿈 꾸는 의사
계명대 동산의료원 산부인과 조치흠(49) 교수. 팬클럽까지 있는 의사다. 1996년 세계 최초로 임신 중 심한 자궁경관 무력증 환자에게 자궁경부 상부봉축술을 복강경으로 성공해 세계 학회를 놀라게 했다. 자궁경관 무력증은 임신 중 일정 시기만 자궁경관이 저절로 열려 유산하게 되는 것. 심지어 10차례 유산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환자들이 조 교수 덕분에 아기를 갖게 됐으니 팬클럽까지 생긴 것도 당연해 보인다. 왜 편한 길을 택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그는 "어려서부터 남들이 하는대로 따라하기를 싫어했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수련의 시절 지역에서 꽤나 이름난 은사를 따라 서울 학회에 간 적이 있었다. 높아만 보였던 그 은사는 서울 학회에서 발언 한 번 못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다.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죠. 세계 최고를 꿈 꾸면 적어도 국내 최고는 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세계 3대 인명사전 중 하나인 영국 국제인명센터(IBC)의 '세계 100대 의학자 2008'에 등재됐고, 미국암학회 정회원이며 국내 대부분 종양 및 부인과 관련 학술회에서 중요 직책을 맡고 있다. 지역에서 가장 많은 부인암 환자를 치료했고, 연간 2천례에 이르는 복강경 수술은 전국 최고 수준이다. 그가 꿈 꾸던 국내 최고 자리에 올랐지만 아직 성에 차지 않는다. 연구실 식구만 5명. 이들에게 나가는 연봉만 1억원이 넘고 유지비를 포함하면 2억원에 이른다. 지금은 민관 프로젝트를 따서 연구를 수행하지만 예전에는 사비를 털어야 했다.
◆나눌수록 많아지는 것이 돈
쉽게 돈을 벌 수도 있었다. 그는 삶의 모토 중 하나라며 뜬금없이 "어른 싸움은 돈 싸움"이라고 했다. 한 때 그의 집안은 내로라하는 부자였다. 아버지는 고위 공직자였고, 어머니는 대구에서 유명한 조산원을 운영했다. 한 때 재산이 50억원대를 헤아릴 정도. 하지만 사업이 기울면서 그 많은 돈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채까지 끌어다 써야했고, 월급에는 차압이 들어올 정도였다. 결혼 반지를 처분하고 아이들 저금통장까지 깨서 빚을 갚아야했다. 미국에 유학가서는 단 돈 1달러를 아끼기 위해 말 못할 설움도 많이 겪었다. 가족보다 6개월 먼저 미국에서 돌아와 있는 재산, 없는 재산 다 처분해서 간신히 사채를 갚았다. 빚만 없다면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동시에 조 교수는 돈이 얼마나 허무한 지 알게 됐다. "없으면 물론 불편하겠죠.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산다는 것은 참 허망한 일입니다. 열심히 살다보면 돈이 생기는 것이고, 아낌없이 나눠줄수록 이상하게도 더 돈이 생기더군요." 지금도 그는 자녀들에게 말한다. "많지 않은 재산이지만 너희들에게 물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나중에 사회에 다 돌려줄 작정이다." 한 때 연봉 3억원을 제시한 병원도 있었다. 하지만 당장 눈 앞의 이익에 담담했기에 힘들지만 보람을 찾는 연구 의사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물론 부인의 공도 컸다. 중매로 만난 부인 김규화(45)씨는 방사선과를 전공해 유방암 진단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조 교수는 "명색이 부부 의사인데 한 때 아파트에 월세를 산다니까 아무도 믿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며 "그 때만 해도 아내가 가계를 책임져 준 덕분에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다"고 했다.
◆환자에게 솔직한 의사
조 교수는 솔직한 사람이다. 그것은 환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수술 합병증이 생겼을 때 솔직하게 잘못을 시인하고, 끝까지 책임질 것을 약속했다. 환자들을 그런 조 교수를 더욱 믿고 따랐다. 2006년 자궁제거 수술 후 요관협착증이 생긴 환자는 수차례 수술 끝에 결국 회복시켜주었다. 하루에 만나는 외래환자는 120여명을 헤아린다. 이미 6월까지 예약이 만료됐지만 아침에 급히 찾아오는 환자도 마다하지 않고 진료한다. "예약을 못한 경우, 오전 9시에 오면 오후 5시까지 기다려야 진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환자들에게 어떻게 예약이 안됐으니 그냥 돌아가라고 합니까?" 그는 꿈이 많은 사람이다. 개인적으로는 제트비행기를 사고 싶다고 했다. 몸이 10개라도 부족하다보니 다소 황당해 보이지만 그런 꿈도 가능하겠다 싶다. 정년을 마친 뒤에는 아내와 함께 세계일주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경비까지 뽑아놨고, 매달 꼬박꼬박 적금을 붓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그는 동산의료원을 세계적인 병원의 반열에 올리고 싶어한다. 그의 연구실은 자궁근종 약물치료법 및 난소암 초기발견인자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의 꿈이 이뤄질 날은 결코 머지 않아 보인다.
글·사진=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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