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봄 안동과 강릉이 자매결연을 맺는 자리에서 두 도시 시장은 천 원짜리와 오천 원짜리 지폐 모형을 교환했다. 천 원과 오천 원 돈에 새겨진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로 대표되는 두 도시의 역사적 전통을 내세운 것이다. 천 원이나 오천 원 돈은 코흘리개 애들도 늘 쓰는 돈으로 익숙하지만 두 분의 사상과 의미는 모르고 사는 이가 대부분이다. 그저 조선의 지배 사상으로 이어 온 성리학을 나라 망친 고루한 공리공론으로 아는 사람들이 적잖다.
35년의 차이가 나는 두 분의 만남은 율곡이 23세, 퇴계가 58세 때였다. 율곡집 연보의 '봄에 예안의 도산으로 퇴계 선생을 찾아뵙다'라는 대목에는 두 분이 주고받은 시가 소개돼 있다. 공자와 주자에 빗대 퇴계의 학덕을 칭송한 율곡은 '한나절 놀러 온 게 아니라 배우러 왔다'는 내용의 시를 지어 올린다. 그러자 퇴계는 '이름 아래 헛된 선비 없다'며 율곡을 칭찬한 뒤 '티끌은 잘 닦여진 거울 그냥 놔두지 않는다'고 정진을 당부했다.
젊은 시절 과거를 통해 벼슬길에 나서기도 했으나 퇴계의 삶은 벼슬보다는 학문과 이치의 연구에 바쳐졌다. 그의 삶은 후학들에게 수양으로 도덕적 가치를 실천한 인간상으로 자리매김됐으며 벼슬자리에 연연하지 않은 그의 선택은 난진이퇴(難進易退)의 실천으로 불려졌다. 그가 보인 난진이퇴의 실천은 부귀영화에 매달리지 않는 조선 선비의 모범이 되기도 했다.
김휘동 안동시장이 지방선거 불출마를 선언하자 안동 사회에서 다시 난진이퇴가 회자된다고 한다. 벼슬길에 나아감을 어렵게 여기고 물러남을 쉽게 생각한다는 퇴계 선생의 정신을 되새기게 한다는 말까지 나온단다. 현직 프리미엄과 탄탄한 지지 기반에도 불구, 물러남을 선택함에 있어 인간적 고뇌가 어찌 없었을 것이며 세간의 억측 또한 없지 않을 터이지만 역사는 흘러야 발전한다며 후진에게 길을 터준 용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춘추시대 제나라의 명재상으로 일컬어지는 안영은 벼슬자리를 자기를 위한 자리로 착각하는 이들을 하류배라고 칭했다. 국록과 지위만 노려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나지 않는 이진난퇴(易進難退)의 벼슬아치를 경계했다. 굶어죽을지언정 의리를 버리지 않는 게 우리의 선비정신이다. 성리학 개론을 쓴 묵점 기세춘은 "새순은 묵은 그루터기에서 싹튼다"며 이 시대 우리의 정체성은 전통의 이해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서영관 논설실장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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