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인 스벤 크라머. 세계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그는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10,000m에서 레인을 잘못 타는 바람에 금메달을 우리나라 이승훈에게 헌납했다. 코치의 실수 때문이었다. 매 바퀴마다 달리는 주로가 바뀌는 스피드 스케이팅의 특성상 이를 똑바로 알려줘야 할 의무는 코치에게 있다. 코치를 바꿀 것이란 예상을 깨고 그는 "한순간의 실수로 코치를 내쫓기에는 함께했던 지난날이 너무 좋았다"며 계속 같이할 것임을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다. 이번 사건 이후 그는 비록 금메달을 놓쳤지만 여전히 10,000m 제왕이란 찬사를 받고 있다.
25일 열린 동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 결승. 여유 있게 결승선을 통과한 우리 선수들은 태극기를 들고 스케이트장을 돌다가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석연찮은 판정으로 실격을 당하면서 금메달을 중국에 넘겨준 것.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때 1위를 한 김동성에게 실격 판정을 내린 호주의 주심이 다시 우리 선수들을 내친 것.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이후 이어져 오던 여자 쇼트트랙 계주 금메달 행진이 마감됐지만 우리 선수들은 여전히 최강임을 입증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기량을 가진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 이규혁. 세계 최고 기량을 갖췄으면서도 다섯 차례나 출전한 올림픽에서는 메달과 거리가 멀었던 그는 밴쿠버 올림픽이 열리는 도중 귀국했다. "안 되는 것에 도전하는 게 슬펐다"며 눈물을 떨어뜨리던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국민들의 눈에 그는 분명 진정한 챔피언으로 자리매김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 가운데 메달 수상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메달리스트가 될 수 없는 것이 올림픽이다. 이번 밴쿠버 올림픽에 출전한 우리 선수는 46명. 이 중 26일 현재 금메달 6개를 포함해 11개의 메달을 땄다. 한 사람이 두 개 이상의 메달을 딴 것을 감안하면 수상자는 20% 남짓이다. 나머지 80%는 엄청난 노력 끝에 최고 기량을 갖추고도 불운으로 시상대에 오르지 못한 선수들이다.
비록 메달을 따내지 못했지만 한 국가를 대표해 출전한 선수들에게 진심 어린 격려를 보내자. 그들은 무관(無冠)에 그쳤지만 제왕(帝王)임에 틀림없다. 올림픽에 출전할 자격을 갖췄다는 것만으로도 찬사를 받을 이유가 충분하다.
최정암 동부본부장 jeong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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