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이루어진다 '헐리우드판 우생순'
'나를 감싸고 있는 밤은/온통 칠흑 같은 암흑/억누를 수 없는 내 영혼에/신들이 무슨 일을 벌일지라도 감사한다/…/분노와 눈물의 이 땅을 넘어/어둠의 공포만이 어렴풋하다./그리고 오랜 재앙의 세월이 흘러도/나는 두려움에 떨지 않을 것이다./문이 얼마나 좁은지/아무리 많은 형벌이 날 기다릴지라도 중요치 않다./나는 내 운명의 주인/나는 내 영혼의 선장'
고통과 어둠 속에서도 세상을 긍정하며, 큰 파도를 넘으려는 위대한 한 영혼이 떠올려진다. 이 시는 영국의 시인 윌리엄 어네스트 헨리(1849~1903)의 '인빅터스'(1875년)라는 시다. '인빅터스'는 라틴어로 '정복당하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
시인은 어릴 때 결핵으로 다리 하나를 절단당하고, 청년기도 늘 병원 신세를 지고, 만년에도 외로웠다. 불우한 자신의 운명에 불굴의 뜨거운 입김을 불어넣고 싶었을까. 시인의 위대한 신념이 녹아 있는 이 시는 이후 외롭고 힘든 이들의 애송시가 되었다.
100년 후 남아프리카공화국 빅터 버스터 감옥의 좁은 감방에서 외롭게 투쟁하는 연약한 한 흑인도 마찬가지였다. 창살 너머 보이는 것이라고는 어지러이 놓여 있는 돌 몇 개뿐, 거기에 내리쬐는 햇빛에도 삶의 의미를 찾던 이 흑인은 27년간 이 시를 읽고 자신을 추슬렀다. 바로 넬슨 만델라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인빅터스'는 흑백차별 정책의 철폐에 평생을 바친 넬슨 만델라의 불굴의 의지를 그가 대통령이 된 후 가진 럭비월드컵을 통해 승화시키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린 영화다.
1994년 지구상 마지막까지 인종차별 정책이 존재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모건 프리먼)가 취임한다. 경제난과 실업률, 무엇보다 차별 정책의 후유증으로 인한 사회 분열이 만연한 나라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백인들은 그들의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았고, 흑인들은 기대와 함께 부담만 주었다.
통합의 길을 모색하던 그는 1995년 열리는 럭비 월드컵을 주목한다. 당시 대부분 백인들로 구성된 남아공 럭비 대표팀은 약체에 속했다. 만델라는 대표팀 주장 프랑수아(맷 데이먼)를 대통령 관저로 불러 우승을 당부한다. 프랑수아는 팀 속에서도 흑백 갈등을 빚고 있는 이 약체팀을 이끌고 월드컵에서 우승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기교 없이 진실의 힘만으로 이 영화를 끌어간다. 가장 힘든 탄압과 인고의 세월을 겪은 후 노벨 평화상을 받고 대통령에 오른 만델라의 삶 자체가 이미 기적이다.
영화는 만델라의 재임 기간 2년을 다루지만, 넬슨 만델라가 어떤 삶을 걸어왔고, 그의 신념은 무엇인지를 잘 알게 해준다. 유복한 백인 아이들의 럭비 연습장과 녹슨 철망 너머 남루한 흑인 아이들이 제대로 된 공도 없이 럭비를 하는 것을 대비시킨 첫 장면부터 인상적이다. 인종 차별보다는 인종 격리가 더 적절한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정책을 기억하는 관객들은 그가 얼마나 위대한 첫걸음을 내디뎠는지를 잘 알 것이다.
통합을 향한 굳건한 신념을 스포츠라는 대중적 코드를 통해 풀어내려는 것을 보면 만델라가 리더십뿐 아니라 얼마나 영민한지도 잘 보여준다. 약체 럭비팀이 모든 국민의 성원과 힘을 받아 월드컵에 승리한다는 것, 그리고 경원시하던 흑백의 컬러가 부둥켜안고 서로의 마음을 녹여 섞는다는 것은 스포츠 이상의 위대한 힘을 느끼게 해준다.
이스트우드는 만델라의 삶을 깊은 통찰력으로 풀어 용서와 화해의 대 메시지를 전해준다. 첫 흑인 대통령의 안전이 가장 위협받던 시절 경호실의 요원을 흑백으로 고루 앉히려는 만델라의 노력만 하더라도 영화 한 편은 나올 법한 일이다.
영화는 가족으로부터 외면받는 만델라의 인간적인 모습도 보여준다. 새벽 산책을 준비하던 만델라가 텅 빈 침대를 바라보는 장면은 가슴이 아린다.
영화는 남루한 아이들의 럭비 연습장에 백인 대표팀이 가서 아이들과 함께 럭비를 하고, 대통령이 선수 하나 하나 이름을 외워 격려하는 장면 등 감격적인 기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만델라가 프랑수아에게 시 '인빅터스'를 적어주고, 이를 깊이 이해한 프랑수아가 만델라의 작은 감방을 찾는 장면 등 다소 교훈적이고, 평면적인 느낌도 받는다.
그러나 흑백이 모두 하나가 되는 럭비 결승전 장면은 감동과 힘으로 버무려 그려내고 있다. 거친 숨소리와 힘이 몰린 근육, 한 치도 밀릴 수 없는 럭비는 만델라의 위대한 투쟁을 보는 듯하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영화제 남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프리먼과 데이먼은 차분하면서 내실 있는 연기로 영화에 묵직함을 더한다. 만델라는 남아공 특유의 발음까지 완벽하게 표현한 모건 프리먼에게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이 영화는 사회와 인간을 바라보는 이스트우드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 다시금 느껴지는 작품이다. 합리적인 보수주의자인 그가 어지러운 세상에 낙담하다 결국 자신을 희생시켜 실낱같은 희망을 보여준 '그렌토리노'에 비하면 '인빅터스'는 그가 어떻게 세상을 일구고, 나아가야 하는지를 웅변하고 있다. 상영 시간 133분.
김중기 객원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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