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이재훈(40·대구 북구 침산동)씨는 벌써부터 내년 설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2011년 설날은 목요일이라 앞뒤로 최소 5일간 쉴 수 있기 때문. 이씨는 회사가 배려해주고 연차휴가를 잘만 사용하면 최대 9일간의 휴가를 맛볼 거라고 내심 기대하고 있다. 이씨는 "올해 설 연휴는 너무 짧아 이곳저곳 다니다 보니 다 끝났다"며 "쉬기는커녕 고생만 실컷 했다"고 푸념했다. 그는 "이제는 휴일을 단순히 쉬는 날로 여길 게 아니라 일의 질적 측면이나 심리적 영향을 고려해야 할 때"라고 했다.
매년 연말이나 명절을 앞두고 직장인들은 달력을 보면서 울고 웃는다. 빨간 날이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것. 그런 면에서 올해는 직장인들에게 최악이다. 주중에 쉴 수 있는 날이 고작 8일이기 때문. 이런 가운데 '대체공휴일제'가 국회에서 한창 심의 중이다. 대체공휴일제는 매년 달라지는 빨간 날의 '횡포'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는 제도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대체공휴일제가 실현될 지는 미지수다. 경영계의 반발이 만만찮기 때문. 이달 1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법안소위를 열어 대체공휴일제 등의 법안들을 논의하자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대체공휴일제에 대해 알아봤다.
◆왜 대체공휴일제인가
대체공휴일제는 말 그대로 공휴일이 다른 공휴일과 겹칠 경우 전후에 있는 비공휴일 가운데 하루를 공휴일로 대체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올해 광복절(8월 15일)은 일요일이다. 직장인 입장에선 법정 공휴일과 일요일이 겹쳐 하루를 손해보는 셈. 대체공휴일제가 도입되면 다음날인 16일을 쉬는 날로 잡게 된다. 한나라당 윤상현 의원 등 7명의 국회의원이 대체공휴일제를 비롯해 공휴일 관련 법안 7건을 국회에 제출했고 현재 국회 심의가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의 법정 공휴일은 14일. 미국(10일)이나 독일(10일), 일본(15일) 등 선진국에 비해 적은 편이 아니다. 타이완(11일), 그리스(12일), 포르투갈(14일) 등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 내외로 우리나라와 비슷한 나라들과 비교해서도 그렇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수치상의 비교다. 미국과 영국, 일본 등은 일부 공휴일을 주중요일로 지정해 토·일요일과 겹치는 것을 방지하고 있고 나머지 국가들은 대부분 대체공휴일제를 실시하고 있다. 매년 쉬는 날의 수가 일정한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매년 3~8일 정도가 토·일요일과 겹쳐 실제 쉬는 날은 1년에 110~115일로 명목 휴일 수 118일(토·일요일 포함)보다 훨씬 줄어든다. 대체공휴일제 도입을 적극 찬성하고 있는 한국노총은 "204년 7월부터 주 40시간·5일제가 시행됐지만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이 가장 길다"며 "이로 인해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하고 노동 의욕과 효율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07년 기준 우리나라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천261시간으로 일본(1천808시간)이나 미국(1천798시간), 영국(1천655시간) 등에 비해 월등히 높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최장 시간을 자랑(?)한다. 이로 인해 삶의 질과 업무 집중도가 떨어져 노동생산성은 미국의 40%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체공휴일이 내수 활성화에 큰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문화관광부 산하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4일 정도 더 쉬게 되면 관광소비 지출액이 4조6천억원 증가하는 한편 생산유발효과 8조원, 부가가치창출효과 3조5천억원 등 경제적 파급효과가 11조5천억원에 이르며 고용창출 효과도 14만명에 이른다.
윤 의원은 "대체공휴일제는 단순히 더 놀게 하자는 법안이 아니라 매년 일정한 편차 없이 공휴일을 찾아 쓰자는 의미"라며 "재계에서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기업들 "부담만 가중"
경총을 비롯한 재계는 대체공휴일제에 부정적이다. 윤 의원이 2008년 말에 대체공휴일제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는데도 아직 법제화가 지지부진한 것은 그만큼 재계의 반대가 심하기 때문.
기업들은 생존 경쟁이 치열한 현실 속에서 대체공휴일제는 기업의 인건비 부담만 가중시켜 결국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휴일에 근로자를 근무하게 하려면 기업은 임금의 50%를 더 지급해야 하는 만큼 대체공휴일제로 인해 부담이 늘 수밖에 없다는 것. 특히 철강·석유 등 장치산업과 유통·서비스업의 경우는 공휴일이 1일 증가할 때마다 약 267억원의 인건비 추가 부담이 생긴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생산성은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으로 낮은데 임금만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이 노사간 갈등이나 대립을 조장해 기업 환경을 악화시킬 수 있는 요인이 될 가능성도 크다.
중소기업들의 반발은 더 심하다. 한마디로 중소기업의 현실을 외면한 처사라는 것. 대구 성서공단의 한 자동차 부품업체 대표는 "대기업은 그나마 대체 인력 수급이 용이한 편이지만 중소기업은 항상 구인난에 허덕인다"며 "근로자 한명이 여러 몫을 해야 하는데 대체 인력을 구하지 못하면 결국 기존 근로자들의 생산일수만 늘려 인건비를 증가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대구경영자총협회 노사대책팀 관계자는 "몇년 전에 토요휴무제가 시행되면서 기존의 공휴일을 줄였는데 다시 공휴일을 늘리자는 것은 기업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재계에서는 샌드위치 데이나 명절 전후로 연차휴가를 충분히 활용한다면 굳이 대체공휴일제를 도입하지 않더라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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