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웰컴 소프트웨어 강국!

입력 2010-02-26 10:44:08

지난해에는 외고 입시 제도의 개선, 밤 10시 이후 학원 교습 금지, 학원'과외 파파라치 포상제, 방과 후 학교의 활성화 등 정부가 국민들의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쏟아냈다. 가히 사교육과의 전쟁 수준이었다. 여느 정부 때보다 강력한 의지를 보여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사교육비는 3.4% 증가하였다. 이 수치에 대해 정부 일각에서는, 예년에 비해 사교육비의 증가율이 다소 낮아졌다는 점에서 사교육비 절감 대책의 가시적 성과로 평가하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지난해 방과 후 학교의 활성화 등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 쏟아부은 예산과 불황, 교육 대상자의 감소, 물가 상승률 등을 감안해 볼 때 가시적 성과로 자축하기보다는 정책의 방향이 올바른지 겸허히 귀를 열고 진단해 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자본주의의 근간은 시장의 원리를 지키는 데 있으며, 시장의 원리는 바로 수요와 공급에 의해 좌우된다. 공급을 줄이면 물가가 폭등하거나 암시장이 생기게 되어 있다. 수요가 있는데 사교육의 공급을 강압적으로 줄이면 그만큼 암거래 시장, 즉 비밀 과외 시장이 형성될 것이다. 비밀 과외 시장은 통계 측정의 사각지대이다. 그렇게 되면 통계 수치는 무의미해진다. 그러므로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서는 공급을 줄이려 하지 말고 수요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학부모와 학생들이 사교육의 필요성을 못 느끼게 해야 한다. 수능 출제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시험 때마다 매년 반복적으로 하는 거짓말이 있다. "학교 수업만 충실히 들으면 충분히 풀 수 있게 출제했다!" 이 말을 믿는 학부모와 학생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처럼 신뢰를 잃어버렸다.

입시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수능 과목을 축소하고 입학사정관제의 도입과 비중을 높이는 것은 올바른 방향의 정책이다. 그와 더불어 독서 이력을 중요한 평가 자료로 활용해야 한다. 국제중과 국제고'외고 등 특목고 입시는 물론 대입에서도 더 비중 높게 독서이력제를 도입해야 한다. 독서이력서는 그 사람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읽은 책의 장르와 내용, 독후 활동 등을 한눈에 보기 좋게 정리한 것이다. 독서이력서에는 그 사람의 가치관과 생각, 꿈과 직업관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볼 수 있는 정보가 들어있기 때문에 중요한 평가 자료가 될 것이다. 독서를 많이 한 학생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게 입시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그러면 사교육의 필요와 수요를 줄이는 올바르고 가장 확실한 사교육비 절감 대책이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세계 소프트웨어 시장 규모는 2002년도 이후 하드웨어 시장을 추월했고, 아이폰의 사례처럼 제품 경쟁력의 중심이 소프트웨어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반도체, LCD 등 하드웨어 산업은 강하지만 구글과 애플이 선도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산업은 세계 시장 점유율이 1.8%에 불과하다. 왜 그럴까? 국민들의 독서량을 비교해 보는 것도 그 근본적 원인과 해결책을 찾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특히 초'중'고'대학생들의 독서량을 조사하고 선진국들과 비교해 보자. 우리나라는 초등학생만 되어도 책 읽을 시간이 없다. 높은 독서량이 스토리 생성 능력을 키우고 이를 기반으로 한 지식 콘텐츠 산업과 소프트웨어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정부에서도 소프트웨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올해부터 2012년까지 3년간 1조원을 투자하는 소프트웨어 강국 도약 전략을 발표했다. 열매부터 따려고 하지 말고 씨앗을 뿌리는 농부의 마음으로 예산의 일부를 초'중'고생들의 독서 증진을 위해 투자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즐겨 읽는 세계 명작 중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동화가 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것은 바로 욕심 때문이었다. 아이들보다 학부모나 정책 입안자들이 다시 곱씹어 읽어 보아야 할 동화가 아닌가 싶다. 부모의 욕심이나 정책 입안자들의 성급한 성과욕 때문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이켜 보아야겠다.

신학기다. 학부모들이 '공부해라!'라고 자녀들을 얼마나 들볶을까? '공부는 그만하고 책 좀 읽어라!'로 학부모들의 잔소리가 바뀌는 대한민국을 만들자. 그러면 자연히 사교육비도 줄고 스토리 산업, 지식 콘텐츠 산업, 소프트웨어 산업에서도 세계 1등 국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류일윤 글뿌리 출판사 대표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