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풍경과 함께] 캄보디아 씨엠립

입력 2010-02-25 17:07:59

타 프롬 사원 건물과 함께 자란 스펑나무 '신비'

앙코르 유적지로 유명한 인구 10만의 아담한 도시인 씨엠립은 벌써 네번째 방문이라 낯설지는 않지만 6번 도로를 중심으로 양쪽 길가에 들어선 수많은 상점과 호텔은 올 때마다 다를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새로 들어선 공항청사는 캄보디아 전통 건축물을 본떠 아담하게 잘 지어져 있다. 그러나 도착비자 발급에 대한 공항 직원들의 노골적인 커미션 요구는 여전하다. 이번 여행은 일행이 많은 관계로 미리 현지 여행사에 도착비자를 의뢰해 놓은 상태라 수월하게 처리됐다. 여러 나라를 여행해 봤지만 이렇게 수월하게 입국장을 통과하기는 처음이었다.

입국장에 도착하니 공항 직원이 내 이름을 적은 피켓을 들고 나를 반가이 맞아주면서 우리 일행의 여권과 각종 서류를 모두 달라고 한다. 그래서 전해주고 나니 짐을 찾아서 무조건 나가라고 한다. 보통 비자를 발급받은 후 입국장 확인 도장을 찍고 나가는데 이 과정이 모두 생략됐다. 여권은 자기들이 알아서 입국 확인 도장을 받은 후에 호텔로 가져다 준다고 한다. 우리 일행이야 편리해서 좋지만 뭔가 뻥 뚫린 듯한 캄보디아의 입국 시스템에 그저 놀랄 따름이다.

공항에서 나와 캄보디아의 동맥인 6번 도로를 쭉 내려오다 보면 길가에 수많은 상점과 호텔이 빼곡히 늘어서 있다. 세련되진 않았지만 네온사인과 가로등이 밤을 밝히는 풍경도 도시풍이다. 불과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이 도로 양쪽은 허허벌판이어서 한참을 지나야 외로이 한 동씩 세워져 있는 호텔 건물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도로 포장도 잘 안 돼 있어 차가 지나갈 때면 항상 흙먼지가 자욱했고, 밤이 되면 가로등마저 없어 호텔 밖으로 나갈 엄두조차 내기 어려웠다.

저녁 무렵 도착한 필자는 호텔에 여장을 풀고 씨엠립의 가장 번화가인 올드마켓 부근에 있는 유명한 카페 골목을 찾았다. 여전히 외국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이 거리 중간쯤 마련된 야외 간이식당에서 저녁 식사 겸 시원한 앙코르 맥주로 이국의 내음에 취해 본다.

12세기경 수르야바르만 2세에 의해 건축된 앙코르와트는 당시로는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건축물이었다. 캄보디아인들 사이에서는 신이 만들었다는 전설이 전해올 만큼 성지로 받들어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신이나 영혼들을 위한 사원, 혹은 수르야바르만 2세의 무덤이라 추측되기도 하는 앙코르와트는 총 높이가 65m로 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과거에 방문했을 때는 위로 올라갈 수 있는 4개의 계단 어디서나 관광객들이 무분별하게 오르내리고 3층은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항상 관광객들로 붐볐다. 지금은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한동안 못 올라가게 통제를 하다가 마침 우리가 방문한 며칠 전부터 한 번에 100명씩 올라가서 관람한 뒤 내려오면 다시 100명씩 올려 보내 관광객들의 요구도 어느 정도 충족시키고,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올라감으로써 발생하는 하중을 줄여 문화재도 보호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본다고 한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폐허로 빛난다는 타 프롬이었다.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를 위해 만든 사원으로, 안졸리나 졸리가 출연한 영화 '툼레이더'의 촬영 장소이기도 하다. 거대한 스펑나무가 사원의 벽 사이사이를 뚫고 자라나는 바람에 힘없이 무너진 석벽의 조각들이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다. 어떤 건물은 거대한 문어가 풍랑을 만나 표류하는 어선을 휘감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사원을 감싸듯이 자란 나무와 사원을 뚫고 자라난 나무들로 인해 폐허가 되어버렸지만 강렬한 인상과 신비로운 모습이 깊이 남는다. 이 나무들은 자를 수가 없다고 한다. 나무를 자르면 사원이 허물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장 억제제를 투약해서 더 이상 못 자라게 하고 있다는데, 녀석들의 덩치로 보아 쉽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오히려 나무의 강력한 힘으로 사원을 지탱해 사원이 넘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스펑나무의 웅장함으로 인해 타 프롬 사원은 더 유명세를 탔고, 씨엠립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찾는 명소가 됐다.

타 프롬 입구에 들어서면 약 500여m 이르는 고즈넉한 숲길이 나온다. 길 양쪽으로 이앵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는데, 이 나무의 액체는 휘발성이 강해 옛날에는 나무의 껍질을 벗겨 흐르는 액체를 받아 등불로 사용했다고 한다. 호기심에 살아 있는 이앵나무의 벗겨진 껍질 안에 라이터로 불을 붙이니 금방 불이 붙어 타는 모습이 신기했다.

오후에는 동양 최대의 담수호인 톤레삽 호수에 갔다. 지금은 건기라 물이 많이 빠진 상태지만 우기 때는 호수 면적이 지금보다 5배 이상 불어난다. 물고기가 풍부해 이곳에 사는 대부분의 수상가옥 사람들은 어업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자기 소유의 땅이 없어 이렇게 물 위에 집을 짓고 정처 없이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온 가족의 하루 벌이가 고작 2, 3달러로, 겨우 연명하는 수준이어서 교육 및 의료 혜택은 꿈도 꾸지 못한다. 호수의 물로 빨래와 식수를 동시에 해결하기 때문에 수인성 질환과 피부병이 많다고 한다.

네댓살 먹은 아이들이 관광객을 상대로 조그만 다라이를 타고 구걸하러 다니는 모습은 몇 년 전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뱀을 목에 걸고 관광객들의 시선을 끌면서 구걸을 한다. 이유인즉, 한 아이가 뱀을 목에 걸고 관광객을 상대로 주의를 끌며 구걸을 하자 신기한 모습에 많은 관광객들이 그 아이에게 유독 많은 관심을 보이며 돈을 주자 이제는 너도나도 모두 뱀을 목에 두르고 구걸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 아이들이 제일 먼저 배우는 말 중 하나가 "원 달러"라고 할 정도로 현실은 기막히다. 한창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미래를 꿈꾸어야 할 어린이들이, 생활전선에 나서서 관광객들에게 "원달러"를 외치며 쫓아다니는 걸 보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미래 인재의 싹을 키우지도 못할 정도로 가난한 캄보디아의 미래는 어떻게 밝힐 수 있을까.

황병수(영남대병원 방사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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