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지도자 암살 계획에 위조 여권이 사용된 것을 두고 유럽연합 외무장관들이 비난 성명서를 냈다. 정보기관 모사드나 이스라엘은 아예 지목하지 않았다. 심지어 암살을 비난하지도 않았다. 자국 여권을 위조한 점만 지적했다. 유럽연합이 이스라엘을 겨냥하지 않는 이유는 복잡하다. 그 중 유대인 학살에 대한 원죄의식도 한 이유다. 유대인 학살에 대해 유럽 각국들은 빚을 지고 있다고 여긴다. 특히 독일의 경우 원죄의식은 강하다. 그래서 주변국을 향한 이스라엘의 행위에 대한 비판은 가급적 삼간다. 객관적으로 옳은 말이라고 해도 역사적 가해자로서 피해자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다는 식이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절 대구경북 사람들은 의기소침했다. 중앙부처 공직자들은 끼리끼리 모이면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대구경북 출신이라는 이유로 쫓겨났다거나 밀렸다는 푸념이 늘어갔다. 그러나 부산 출신의 전남대 김상봉 교수는 경상도 사람들의 푸념에 대해 '경상도 사람들은 전라도 사람들에게 지역차별을 말할 자격이 없다'는 내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단지 전라도라는 이유로 호적을 옮기고 고향 사투리 대신 서울 말씨로 바꿔야 했던 사람들이 겪은 신분의 차별과 경상도가 겪는 일시적 푸대접을 같은 수준에서 볼 수는 없다는 논리였다.
타 지역의 적잖은 사람들은 대구경북이 많은 것을 독점했다고 여겼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진 권력의 원천이기에 온갖 혜택을 받았을 것으로 믿었다. 대구의 특정 고교가 나라를 망쳤다는 극언도 나왔다. 지역감정의 가해자로 지목하는 이도 있었다. 대신 찌들어가는 대구경북의 실상을 말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허상을 대구경북의 모습으로 오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탄생은 대구경북에 변화를 가져왔다. 자포자기의 불평 대신 희망을 말하는 소리와 모습들이 많아졌다. 국책사업도 유치하고 내려오는 예산도 두툼해졌다. 뭔가 되겠다는 희망과 여유가 생기자 배타성을 버리고 소통을 하자는 자성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지역에는 조금씩 활기가 돌았고 서울과 타 지역 사람들의 인식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그러나 최근 국가적 화두가 된 세종시와 이른바 친이 친박의 갈등을 바라보면 대구경북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는 위기감을 떨칠 수 없다. 원안이든 수정안이든 세종시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 때문이다. 대구경북에서 나오는 세종시 수정안 반대 논리의 바탕에 지역의 이익 여부가 지나치게 부각되는 현상은 오해와 억측을 불러올 소지가 다분하다. 정책에 대한 찬반의 선택에는 나와 내가 살고 있는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가 우선 조건이기에 대구경북이 받을 영향을 따지는 게 잘못이란 말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손해 볼 수는 없다는 주장은 대구경북이 모든 것을 독점하려고 한다는 의심을 살 수도 있다는 말이다.
대구경북이 수십 년 정권의 탄생 지역이라지만 덕 본 사람은 일부일 뿐 대다수는 심리적 우쭐함을 빼면 덕 봤다고 내세울 게 없다. 그러기에 지역은 지금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강하다. 그러나 전라도 경기도 강원도 서울 사람들이 우리의 절박함을 곱게 봐줄지는 모를 일이다. 김범일 대구시장은 사석에서 정부 주요 인사들이 대구는 무조건 덤비고 탐낸다며 핀잔을 준다고 전했다.
이른바 한나라당의 친이 친박 갈등은 대구경북을 궁지에 빠뜨릴 수도 있다. 친이 친박의 핵심에는 대구경북 출신이 다수다. 나라가 끝장이라도 날 듯한 친이 친박들의 지나친 경쟁이 행여라도 지역민의 줄서기로 이어진다면 그 결과는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대구경북은 자자손손 우리 아들딸이 살아야 할 터전이다. 오늘 당장의 자리와 이익에만 매달려 미래를 멍들게 할 권리가 우리에겐 없다. 잘나갈 때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 어려울 땐 아무것도 아니던 일도 주목을 받을 땐 치명상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재도약의 걸음마를 떼는 대구경북은 목소리를 낮추어야 한다. 대신 스스로 힘을 모으고 땀을 쏟아야 한다. 사람이 달라져야 대구에 희망이 살아난다.
徐泳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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