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전쟁국가 일본(이성환 지음/살림 펴냄)

입력 2010-02-24 08:48:20

일본은 전쟁을 통해 나라를 부양해 왔다?

전쟁으로써 전쟁을 부양하고, 전쟁으로써 나라를 부양해온 일본의 근현대 전쟁 역사를 살펴보는 책이다. 메이지유신(1868년) 이후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대한 분석이자, 전쟁이라는 틀로 1800년대 후반부터 1945년까지 국제관계를 들여다보는 책이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에게 전쟁(청일 전쟁, 러일 전쟁, 중일 전쟁, 태평양 전쟁)은 군사력으로 국가발전을 이루려는 그들의 국시 같은 것이었다. 일본은 전쟁을 통해 나라를 일으키고 부를 쌓았으며, 전쟁(태평양 전쟁)을 통해 그때까지 쌓은 부를 잃었고, 또한 전쟁(6·25전쟁, 베트남 전쟁)을 통해 일어섰다.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에서 일본은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이겼다. 두 전쟁 당시 일본은 국운을 걸었지만 청나라와 러시아에게는 국지전적인 성격이 강했다. 전쟁에 패했음에도 청나라와 러시아가 건재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런 점에서 일본은 운이 좋았다. (운 역시 실력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일본은 이길 수 없는 전쟁에서 이김으로써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일본의 대(對)청나라 전쟁 승리는 군사력 차이라기보다는 정치, 사회적 근대화의 차이였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은 신분제 폐지와 국민 개병제 등을 통해 국가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을 동일시하는 이른바 '근대적 국민'을 양성했다. 이에 반해 청국군은 자신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야 하는 이유를 몰랐다. 평양전투 당시 1만7천명의 일본군을 맞이한 청국군 1만2천명은 밤중에 성을 버리고 도망쳤다. 싸우지도 않고, 장비와 식량을 모두 버리고 도망친 것이다. 지휘관인 이홍장 자신도 전투로 생기는 병력 손실은 곧 자기 세력의 약화로 판단했다. 청국군은 자신이 살아야 사는 것이었고, 일본군은 자신이 죽어서 나라가 살아야 자신이 산다고 믿었다. 일본이 전사자를 야스쿠니신사에 합사하고 위령제를 지내는 것은 결국 '멸사봉공'을 가르치려는 교육인 셈이다.

러일 전쟁은 어른과 아이의 전쟁이었으나 결과는 아이의 승리였다. 러시아의 발틱 함대는 일본 해군과 싸우기 위해 7개월에 걸쳐 북해, 대서양, 희망봉, 인도양, 중국해를 돌아 1만6천 해리를 항해했다. 러시아군의 항로는 대부분 영국 해군의 세력하에 있었고, 당시 일본과 동맹을 맺고 있던 영국은 항해하는 러시아군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1만6천 해리를 항해하는 동안 발틱 함대는 석탄과 물의 보급, 병사들의 휴식 등을 취할 수 없었다. 이에 반해 일본 해군의 도고 헤이하치로는 맹훈련을 거듭하며 발틱 함대를 기다렸다. 쓰시마 해협으로 들어왔을 때 러시아 함대는 병사들의 피로와 정비 부족으로 함포를 쏘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전투 개시 30분 만에 승패는 갈렸다. 러시아내 사회주의 발흥으로 불안해진 국내 정세를 안정시키기 위해 작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한 니콜라이 2세의 안이한 대응이 낳은 결과였다.

일본의 전쟁은 경제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청일 전쟁에서 얻은 배상금으로 산업 발전을 도모했고, 러일 전쟁 때는 배상금이 없었으나 조선과 만주 등 해외 시장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1차 세계대전을 통해서는 엄청난 자본을 축적할 수 있었다. 또 6·25전쟁 특수로 전후 복구의 성장 발판을 마련했고, 베트남 전쟁으로 1960년대 고도 성장을 구가했다.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것 역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중국을 점령하려는 일본은 자원 확보를 위해 동남아 진출을 원했고, 미국의 반대에 부딪혔다. 미국은 독일이 유럽을 장악하고, 일본이 아시아를 장악하는 상황을 원하지 않았다. 중일 전쟁 당시 미국이 중국을 지원했던 이유다. 일본이 중국을 공격하자 미국은 자국내 일본 자산을 동결하고, 석유 수출을 금지했다. 석유 수입의 4/5를 미국에 의지하고 있던 일본은 궁지에 몰렸다.

일본은 미국의 태평양 함대를 묶어놓은 다음, 동남아시아를 완전히 정복하겠다는 생각으로 진주만을 기습했다. 동남아시아를 정복해 자원을 확보한 뒤, 미국과 결전을 벌일 생각이었다. 진주만 기습 후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수마트라 전역을 점령해 석유를 비롯한 전략 물자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고, 어느 정도 자급자족 체제를 갖췄다. 그러나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에서 항공모함 4척을 잃는 대패로 태평양 제해권을 상실했다. 태평양을 장악한 미국은 항공모함을 동원, 일본 본토를 폭격하기 시작했다. 일본 패배의 시작이었다.

이 책 '전쟁국가 일본'과 함께 '국화와 칼'(루스 베네딕트 지음)을 읽어보면 일본인의 전쟁관, 국가관을 더욱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은 1940년 9월 독일, 이탈리아와 3국 동맹을 맺었는데, 거기에는 '세계를 대동아권, 유럽권(아프리카 포함), 미주권, 소련권의 4대권으로 해 전후 강화회의를 통해 지도자의 지위를 점하여 질서를 유지한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니까 일본은 다양한 국가의 대등한 공존이 아니라 1등 국가와 2등 국가, 3등 국가 등으로 위계질서를 세워야 평화롭다는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 95쪽, 3천300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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