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스토리텔링'으로 거듭 사는 도시

입력 2010-02-23 08:46:31

산업화 시대, 제품의 대량생산과 이의 원활한 유통, 소비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인구와 물상이 밀집되는 곳을 우리는 도시라는 이름으로 불러왔다. 공장, 빌딩, 백화점, 아파트, 도로, 학교, 은행, 극장, 공원, 카페 등은 도시 생활의 거점이자 핵심 상징물이었다. 자본주의 체제의 심화와 더불어 도시는 전지역적으로 확대 재생산되어 갔고, 한편으로 내적으로 끝없이 스스로를 재편성해왔다.

1960,70년대 경제의 기적을 일군 한강의 도시 서울이 그 지탱의 축을 강북에서 강남으로 넘긴 지 20년은 족히 넘었고, 농촌이거나 위성도시에 머물던 경기 일원의 여러 도시는 이후 '신도시'라는 이름으로 서울의 영광을 유사체험해 오고 있다. 부산, 대구, 인천을 비롯한 많은 대도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을 연출했다. 도시의 주요 기능은 인근에 개발된 신도시로 이관되고, 대신 구 도시의 권력을 되찾으려는 노력은 있던 건물을 부수고 새로 만드는 전략으로 추진되었다. '신도시개발'과 '도시재개발'은 개발 독재기를 지난 시기 우리 사회에 있어온 가장 두드러진 도시정책이었다.

21세기 들어 사람들이 누대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살아온 도시를 부수고 새로 짓는 정책에 의문을 제기하고 가능한 한 현재의 도시에서 창출할 수 있는 에너지를 집약시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려는 지자체가 늘어났다. 이들은 주로, 대량생산-소비 중심에서 의의를 찾던 구 도시의 시스템을 통하지 않고 하이테크나 문화기술 등 정보지식 집약형 사업이나 교통개선, 조경, 건축 등의 시도를 통해 도시 가치를 높이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는 이미 '도심재생사업'이라는 말로 널리 이해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여러 지자체에서 행해지고 있는 '도심재생'은 뉴타운 조성이나 계획도시 건설 등과 같은 구시대의 신도시개발 사업과 비슷한 유형이 적지 않아 보인다. 여기에는 도시 전체를 재편하면서까지 친환경적인 고부가 사업을 추진하는 사례도 있을 것이다. 국책 사업 실시, 올림픽 유치, 대형 드라마 촬영지 제공 등을 위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막대한 예산을 들여 도시 전체를 바꾸려는 예도 있다. 문제는 그것이 개발, 재개발로 표변해온 종래 도시개발정책의 폐습이 나타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즉, 이득의 급작스런 편중 분배, 예상치 않은 환경 파괴, 사업 중단, 사후 사업 미추진, 지역민의 계층 갈등, 지역 이기주의의 충돌 등 개발시대에나 나타날 수 있는 크고작은 분란이 재현될 가능성을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겠다. 도심재생이 대규모 사업이 될수록 그럴 우려는 그만큼 더 커진다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기존 도시의 원형을 유지, 복원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데 목적을 두는 도심재생사업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비교적 예산이 많이 투여되는 군산 구도심 거리재생을 비롯해서 서울의 북촌 한옥마을, 부산 남구의 철거대상지, 대전 관내의 달동네 등에서 행해지는 도심재생은 도시인들의 희로애락이 깃든 삶의 공간이 내재하고 있는 가치를 발굴해 주변에 나누고 전하며 새로운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수 년 전부터 도심재생을 핵심 구정으로 삼아온 대구 중구의 경우도 경상감영공원, 대구성, 향촌동, 약령시한의약문화관, 진골목,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김원일 장편 무대가 된 '마당깊은 집'과 골목 등 역사문화적인 의미를 지닌 다양한 장소를 찾고 재구성하는 도심재생으로 상당한 사업성과를 올리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성공적인 도심재생사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 사람들이 그 공간을 통해 실재감을 느끼게 되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다. 스토리가 이야기 그 자체를 뜻하는 말이라면, 스토리텔링이란 관심거리가 될 만한 스토리 상황이 지금의 일로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쓰거나 체험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말이다. 이를테면, 소설 '마당깊은 집'에서 홀어머니 슬하의 어린 장남으로 신문배달을 하며 살림을 도운 길남이 스토리는 진골목 좁은 길을 돌고도는 체험에서 실제의 느낌으로 확연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영화 '아바타'의 3D영상도 더 명확하게 스토리텔링을 제공해 실감을 더한 예다. 대구 중구의 도심재생은 작은 골목들이 품고 있던 역사문화적 스토리를 찾아내고 그것을 현재의 스토리처럼 거듭 느끼게 하는 '스토리텔링'으로 그 도시를 거듭 살게 만든다고 할 수 있다.

박덕규(소설가, 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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