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47년째, 이렇다 할 히트작이 없어 잘 써야 한다는 생각…책 내
#등단 47년째인 송일호씨는 지금까지 장편소설 3권과 중편 2편, 단편 10편을 냈다. 한때 문학과 거리를 두고 있었음을 고려하더라도 과작이다. 올해 장편소설을 출간할 계획이다.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오래 살았지만 나는 이렇다 할 히트작이 없어요. 이제는 책 내기가 겁이 납니다. 잘 써야 한다는 생각, 오랜 세월이 지나도 살아남을 책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묵직합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끙끙거리는 그를 향해 아내는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원고를 달라고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뭐 하러 그 고생을 하느냐"고 타박이다. 그래도 멈출 수 없는 게 소설이다.
"오랫동안 써온 소설이 있었는데, 컴퓨터 문제로 날려버렸어요. 전산 전문가를 찾아갔더니 '복구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 말에 충격을 받아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 갔습니다. 혈압이 200이 넘었더군요. 그렇게 죽는 줄 알고 가족들이 모이는 소동을 피우기도 했습니다."
그는 세로쓰기 원고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가로쓰기 원고로 바뀌면서 적응하느라 힘들었다. 세로로 쓰던 사람이 가로쓰기 원고지 앞에 앉으니 머리에 가득하던 생각이 싹 달아나버렸다. 겨우 적응했다 싶으니 컴퓨터가 나왔고, 자판을 익히느라 또 오래 고생을 했다. 이제는 컴퓨터에도 어느 정도 적응했는데, 체력이 따라 주지 않는다. 젊은 시절엔 하루 여덟 시간, 열 시간씩 꼼짝도 않고 앉아서 썼는데, 지금은 서너 시간도 버겁다.
원로 소설가로 그는 요즘 문학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문학이 대중의 외면을 받는 것은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전국의 문예창작학과가 문제입니다. 문학성 타령에, 등단을 위한 기교에 집중하니 작가는 많아도 읽을 만한 게 없습니다. 글에는 삶의 체험이 묻어 있어야 하는데, 요즘 소설에는 지식만 가득합니다. 그 많은 문예창작학과 졸업생, 등단자들은 어디서 무엇을 한답니까?"
그는 이야기 없는 소설은 허황하고, 언제, 어느 페이지에서 책을 덮더라도 아쉬울 게 하나도 없다고 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가 펼쳐지던 소설들은 사라지고, 작가 내면의 별 특별할 것도 없는 느낌만 나열하고 있다고 했다.
"문학성을 강조하는데, 이야기를 쓴다고 문학성이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문학성은 기본입니다. 현진건의 소설에는 이야기가 풍부해요. 그의 소설을 두고 문학성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문학성과 이야기는 서로 상반되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서 그는 각 신문사들의 신춘문예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춘문예 때마다 허황한 이야기, 무슨 이야기인지도 모를 이야기를 뽑으니 작가 지망생들이 그런 유(類)의 소설만 쓴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 소설에는 세련된 문장이 있을 뿐 이야기가 없다. 이야기가 없다는 것은 삶에 대한 이해와 애정. 체험이 없는 것" 이라며 "삶이 없는 문학이 무슨 문학이냐?"고 반문했다.
"해마다 전국 신문사의 신춘문예가 끝나면 한국소설가협회에서 '신춘문예 모음집'을 냈어요. 그러나 작년부터는 책을 안 냅니다. 안 팔리니까요. 재미없는 소설들을 묶어놨는데 누가 읽겠어요?"
그는 문학이 위기라고 하지만, 얼마든지 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야기가 있고, 삶이 있는 작품을 쓰면 독자들이 찾는다는 것이다.
"흔히 작가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작가주의 좋죠. 하지만 대중을 상대로 책을 팔 생각이라면 독자와 공감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혼자 좋아서 책 쓰고, 혼자 읽을 요량이라면 무엇을 쓰든 상관없다. 그러나 욕심은 대중을 향하고 있으면서, 글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아쉽습니다."
송일호 작가는 또 원전이 있는 역사소설을 쓰는 작가는 생명이 다한 작가라고 했다.
"이순신, 삼국지, 수호지 등 역사적 이야기가 이미 있는 것을 소설로 쓰는 것은 엄밀히 말해 창작이 아니라 각색입니다. 이미 이야기 뼈대가 있는 소설에 매달리고 있다면 그 작가는 더 이상 쓸 이야기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는 '문학은 모든 예술의 근간'이라며, 예술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이야기가 있는 문학 작품이 많이 나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밝혔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사진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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