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7시 대구 남구 봉덕동 모 PC방에서 만난 이석준(가명·28)씨는 노숙자처럼 보였다. 덥수룩한 수염이 턱밑까지 자라 있었고, 마우스를 만지는 손톱에도 시커먼 때가 끼여 있었다. 눈에 선 핏발은 타인에게 두려움까지 주었다.
이씨의 게임 중독은 대학을 졸업한 3년 전부터 시작됐다. 친구의 권유로 시작한 온라인 게임이 불행의 전주곡이었다. 유럽 중세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게임에 푹 빠져 하루 8시간 이상 컴퓨터 앞을 떠나지 못했다. 취업 공부까지 완전히 접었다.
이후 이씨는 캐릭터 레벨이 쌓이면 쌓일수록 게임 중독에 더 빠져드는 악순환에 괴로워하고 있다. 이씨는 "누가 제발 좀 말려줬으면 좋겠다"며 "게임을 접고 싶지만 하루도 못 견디고 다시 PC방을 찾게 된다"고 하소연했다.
10대 게임 중독이 20, 30대까지 '고리화'하고 있다. 10여년 전 온라인 게임에 빠진 당시 청소년들은 20, 30대 성인이 된 뒤에도 게임 중독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다시 중독되고 있다.
경기도 양주에서는 한 20대 청년이 어머니가 인터넷 게임에 빠져 지낸다며 나무라자 둔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16일엔 인터넷 게임에 몰두하던 30대 남성이 갑자기 쓰러져 숨지는 사고도 발생했다. 경찰조사 결과 숨진 30대는 서울 용산구 한 PC방에서 설 연휴 기간을 포함해 닷새 동안 인터넷 게임에 빠져 있었다.
20, 30대 성인의 게임 중독은 통제가 안 되고 취업 욕구를 상실케 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문제화 하고 있다.
한국게임산업진흥원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 12%가 게임 과몰입(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으며, 하루 평균 3시간 이상 게임에 빠져 있다는 것. 청소년의 경우 정기적 실태 조사에 따라 상담 센터 치료가 가능하지만 성인 게임 중독은 실태파악도 힘든 지경이다.
게임 중독으로 대학병원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K(36)씨 역시 성인이 된 후 게임 중독에 빠졌다. 청소년 시절에는 몰입 정도였다가 30대 이후 게임 중독 증세가 찾아왔다. 잠시나마 직장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겠다던 단순한 생각에서 게임을 시작했지만 좀체 헤어나지 못해 직장까지 그만뒀다. 그는 "가족들에게 목욕탕 간다고 말하고 PC방에 박혀 지냈다"며 "컵라면을 먹으면서 게임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게임 과몰입 상담센터는 운영되고 있지만 성인 중독은 정신과 치료 이외는 창구가 없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성인들의 지나친 게임 이용 방지를 위해 업체들이 과몰입 방지 시스템을 마련하도록 유도하고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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