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낚싯대 하나로 즐기는 신선놀음
어릴 적 놀이터는 금호강이었다. 멱 감고, 다슬기 줍고, 돌 틈 뒤져 퉁가리 잡고, 우산살 작살 총으로 모래무지 잡고, 파리 낚시로 피라미 낚고, 반두로 수초 속 붕어 잡고, 잠수하여 다리 밑 메기 건져내고, 오! 많기도 해라. 그 중에서도 가장 멋있는 신선놀음이 파리낚시로 피라미를 잡는 것이다.
피라미 낚시는 낚싯줄에 인조 파리를 묶은 대나무 낚싯대 하나와 소쿠리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낚는 방법은 흐르는 물에 낚싯줄을 띄우고 바람과 물결의 방향에 따라 적절한 고패질을 해 주어야 피라미들이 제대로 문다.
#바람'물결 방향 따라 적절히 고패질
다시 말하면 일정한 리듬에 따라 낚시 바늘이 흘러가는 반대 방향으로 낚싯대를 쳐 주어야 한다. 고기가 물렸을 때 너무 세게 치면 피라미는 미늘 없는 바늘에서 떨어져 공중에서 곤두박질친다. 반대로 흘러가는 대로 그냥 놔두면 가짜 미끼라는 걸 얼른 알아차리고 물지 않는다. 날씨와 물결과 바람의 방향을 익히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린다.
난을 그리는데 삼전지묘(三轉之妙)란 기법이 있다. 난 잎이 자연스럽게 세 번 휘어져 뻗어나가는 모습을 붓으로 묘사하는 기술인데 욕심을 앞세우면 절대로 성취할 수 없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우란 삼십, 좌란 삼십'이라 했다. 그것은 좌우 기법을 익히는 데 각기 삼십 년이 걸린다는 말이다.
피라미 낚시도 이와 비슷하다. 내 고향에는 피라미 낚시의 명인 두 사람이 있었다. 필이 아버지인 안씨와 원이 아버지인 이씨가 그들이다. 그들은 혼자서 낚시를 즐길 뿐 어느 누구와도 함께 다니지 않았다. 해거름에 이씨의 피라미 낚시 솜씨를 먼발치에서 구경한 적이 있다. 궁금한 나머지 그 비법을 물어 보니 답은 이외로 간단했다. "고기가 놀고 있는 곳에 던지면 돼." 그런데 고기가 어디서 노는 지는 가르쳐 주지 않았다. '우 피라미 삼십, 좌 피라미 삼십'이었다. 세상에는 특출내기도 있고 보통내기도 있고 신출내기도 있는 법이다. 시간만 나면 강으로 나가 낚시질을 한 덕으로 '제법'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가 되었다. 여름 오후에 나가 저물녘까지 피라미를 잡으면 비늘에 햇살이 톡톡 튀는 싱싱한 은빛 축복이 바구니에 가득했다.
##낚시 후 집에 돌아오면 손국수 기다려
대학 일학년 여름. 서울에서 미술대를 다니던 나 보다 몇 살 위인 남녀가 우리 집 아래채에 세를 얻어 들어왔다. 사랑의 도피처가 우리 집이 된 것이다. 남자는 석월(石月), 여자는 우경(雨景)이라고 했다. 이름인지 호인지 하여튼 근사해 보였다. 석월 형은 오토바이를 타다 다친 반점 흉터가 얼굴에 거뭇했고 우경이 누나는 아주 예쁘지는 않았지만 프랑스 영화 '뽕네프의 연인'에서 화가 역으로 나오는 미쉘(줄리엣 비노쉬)처럼 멋스러웠다.
석월 형은 내가 학교에 가고 나면 온종일 하릴 없이 빈둥거렸다. 나는 석월 형을 강으로 끌어내어 피라미 낚시를 가르쳐 손놀림이 제법 익숙하도록 만들었다. 토요일이면 밀짚모자를 삐뚜루 쓰고 낚시질에 열중하고 있는 석월 형과 여름 오후를 함께 보냈다. 땅거미가 낄 무렵에 '성자, 마을에 돌아오다'(When the saints go marchin' in)라는 해리 베라폰테의 노래를 휘파람으로 불면서 강둑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매캐한 모깃불이 지펴진 마당의 살평상 위에는 어머니와 우경이 누나가 함께 민 손국수, 그것도 파란 호박나물이 듬뿍 얹혀 있는 손국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보릿짚을 때 미리 달궈둔 조선 솥뚜껑에 피라미 '찌짐'을 붙이느라 정신이 없다. 석월 형은 시골에 내려와서 배운 막걸리 생각이 간절하여 입맛을 쩍쩍 다시며 앉아 있다. 나는 그를 위해 빈 주전자를 들고 대문 밖으로 달음질쳐 나간다. 옆집 초가지붕 위로 솟아오른 달이 빙긋 웃는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